18일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신용회복위원회 동서울지부를 찾은 한 20대 청년이 워크아웃을 신청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중견기업에 다니다 3년 전 퇴직한 강모 씨(58)는 최근 만기가 돌아온 예금 5000만 원을 찾아 20대 후반의 아들에게 빌려줬다. 취업을 포기하고 인터넷쇼핑몰 창업을 해보겠다고 나선 아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취업 준비를 하던 아들은 지난해 아무런 생각 없이 3주간 카드대금 45만 원을 연체했다가 신용등급이 7등급으로 추락해 버렸다. 짧은 기간의 카드 연체라도 정상적인 금융 생활에 큰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강 씨는 “아들은 제 힘으로 사업자금을 마련해 보겠다고 했지만 현재 아들 명의로 대출이 되는 곳은 대부업체뿐”이라며 “차라리 내 노후자금을 깨서 빌려주는 게 낫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생산·소비 활동을 왕성하게 시작해야 할 20대의 금융 문맹(文盲)은 청년층의 ‘금융 절벽’으로 이어지면서 한국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특히 20대 본인은 물론이고 부모의 노후 준비에도 악영향을 주는 사례가 나올 정도다.
20대의 금융 문맹 수준이 심각해진 것은 일선 학교에서의 금융 교육 부족, 빚과 소비를 권장하는 사회 풍토가 빚어낸 결과인 만큼 사회 전체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 20대 금융 무지, 부모 노후부담으로도 이어져
저금리·고령화 시대를 맞아 자산관리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금융 이해력이 60대보다도 떨어지는 20대 젊은층은 이런 흐름을 잘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일반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재테크 강연을 자주 하는 김지용 신한은행 미래설계센터 차장은 20대 신입직원을 상대로 강의할 때면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할 일이 많다. 재테크에 대한 젊은 직원들의 관심 자체가 적은 데다 기초적인 금융 상식까지 다시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차장은 “부동산 대세 상승기가 지나고 금리도 떨어지면서 지금의 20대는 금융을 모르면 재테크하기가 선배 세대보다 힘든 상황인데도 별 관심이 없다”며 “초고령사회를 앞둔 한국의 젊은층은 금융을 모르면 노후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거나 결혼한 이후에도 부모에게 얹혀살면서 경제적 지원을 받는 이른바 ‘캥거루족’ 청년층이 급증하는 것도 20대의 금융 무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종호 한국금융교육학회 회장(서울교대 명예교수)은 “금융 지식이 모자란 20대가 합리적 소비 생활과 돈 관리를 못하다 보니 취직을 한 뒤에도 경제적인 독립을 못하고 있다”며 “20대의 문제가 부모의 부담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 속에 무분별하게 대출을 받는 20대가 늘면서 청년층의 빚은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정부의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빚을 지고 있는 30세 미만 가구주의 평균 부채 규모는 지난해 2960만 원으로 3년 전보다 20% 이상 급증했다.
20대의 금융 무지는 한국 금융산업의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준다. 박기출 전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은 “금융 지식이 떨어지는 소비자가 많을수록 금융 회사는 불완전 판매를 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이는 금융업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건강하고 역량 있는 젊은 세대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한국의 20대가 ‘금융 실패’에 직면하면서 성장 모멘텀을 상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학교·가정·사회가 모두 금융 교육 나서야
전문가들은 20대의 금융 문맹은 한국사회 전반의 금융 교육 부재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국내 초중고교 전체 교과 과정에서 금융 교육 비율은 1%도 되지 않는다. 초중고교 12년을 통틀어 금융 교육 시간이 채 10시간이 안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미국은 대통령 직속 금융 교육 자문기구를 두고 43개 주(州)의 고교 교과에 금융을 포함시켰다. 17개 주에선 의무교육으로 편성했다. 영국도 중고교(11∼16세)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금융 교육을 의무화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서구 사회에서는 학교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부모들이 자연스럽게 돈 관리의 중요성을 키워주고 이른 나이부터 아이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경제적 자립심을 키운다”며 “우리는 이런 게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박 전 소장은 “20대가 금융을 모르는 건 학교는 물론이고 집에서도 40, 50대 부모들이 충분한 금융 지식을 갖추지 못해 교육을 못 시킨 탓”이라며 “우리 사회 전체의 금융에 대한 무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저축보다는 소비와 빚을 권하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20대가 제대로 된 금융 마인드를 익힐 기회가 없었다는 분석도 있다. 천규승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연구원은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는 대부업체 광고가 쏟아지고, 정부도 가계 빚을 늘리는 방향의 단기 부양책을 내놓고 있다”며 “20대의 금융 이해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정규교육 과정에 체계적이고 내실 있는 금융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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