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울산 남구 산업로 한국넥슬렌유한회사(KNC) 사무실에 들어서자 한쪽 벽에 설치된 진열대에 이런 제품들이 놓여 있었다. KNC는 SK이노베이션이 100% 자체 기술로 개발한 고성능 폴리에틸렌인 ‘넥슬렌’을 생산하는 곳이다. 김길래 KNC 공장장은 “넥슬렌으로 제조되는 제품 중 크기가 작은 것들만 일부 전시해 놓았다”고 설명했다.
고성능 폴리에틸렌은 과거 다우케미칼, 엑손 모빌, 미쓰이 등 해외 메이저 화학회사만 생산해왔다. SK이노베이션은 2010년 넥슬렌 개발에 성공한 뒤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화학회사 ‘사빅’과 50대 50 지분으로 합작법인 ‘SSNC’을 설립했다. 울산공장은 지난해 10월 준공됐다. 상업생산 6개월째인 현재 넥슬렌이 수출된 곳은 58개국에 이른다.
이날 9만579㎡(약 2만7400평) 규모 부지에 들어선 공장에선 쌀알 모양의 넥슬렌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건물 밖에선 25t 트럭들이 바삐 오가며 포장된 제품을 항구로 실어 날랐다. 생산량은 연 23만t. 대부분은 해외에 수출된다. 김 공장장은 “중국 동남아 유럽 미국 등 세계 전역에 수출한다”며 “특히 중국에서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사실 국내 석유화학업계에서 중국시장은 골칫거리로 꼽히곤 한다. 과거 범용 화학제품의 최대 수요처로 유망 시장이었지만 현지 자급률이 상승하면서 공급과잉으로 수출에 직격탄을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이 생산하지 못하는 고부가 제품은 꾸준히 수요가 늘고 있다. SK종합화학이 넥슬렌을 통해 중국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개척한 이유다.
홍승권 SK이노베이션 글로벌 테크놀러지 화학연구소장은 “넥슬렌은 기존 범용 폴리에틸렌보다 내구성, 투명성, 가공성 등이 뛰어나다”며 “매년 10% 이상 성장하는 고부가가치 고분자 소재 산업”이라고 말했다.
자체 기술로 넥슬렌을 개발하는 데엔 꼬박 7년이 걸렸다. 하지만 개발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SK는 고성능 폴리에틸렌 시장에서 인지도가 낮아 시장 조사와 사전 마케팅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홍 소장은 “제품 프로모션을 위해 (고객사에) 미팅을 요청해도 ‘두 달 뒤에 연락하라’며 만남조차 거부하는 곳이 많았다”며 “한 미국 회사는 만난지 20분 만에 커피 잔을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어려움을 겪던 중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결승전에서 최나연 선수가 우승하며 SK 로고가 찍힌 모자를 쓴 모습이 TV로 중계됐다. SK 임직원은 기지를 발휘해 그 모습을 고객사 미팅에서 발표 자료로 활용했다. 그제야 보다 친절한 반응이 되돌아오기도 했다.
세계 고부가 화학제품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해외업체와의 전략적 제휴가 절실했다. 김항선 SSNC 대표는 “사빅은 넥슬렌 주 원료인 에틸렌 생산량을 기준으로 세계 1위이고, 폴리에틸렌 시장에서 강한 마케팅 능력도 갖추고 있다”며 “사빅과의 합작이 성사되면서 넥슬렌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SSNC는 사우디에 제2공장을 지어 연간 총 100만t 규모의 글로벌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홍 소장은 “앞으로 폴리올레핀(폴리에틸렌을 포함한 고분자 소재의 일종) 시장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을 계속 개발하고 사업화해 이 산업에서 글로벌 톱이 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울산=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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