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4일 과잉공급으로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한 국내 철강업계를 구조조정 1순위로 지목했다. 사진은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제2고로 모습. 동아일보 DB
산업계에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된다. 철강업계가 첫 번째 타깃이다.
정부가 8월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 시행을 앞두고 구조조정 1순위로 철강업계를 꼽았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4일 광주에서 열린 산업단지 수출카라반 행사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원샷법에 따른 구조조정을) 1차적으로 철강업종부터 시작할 것”이라며 “이미 업계와의 얘기가 거의 끝났다”고 말했다.
철강산업은 그동안 대표적인 공급과잉 산업으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철강산업을 시작으로 조선, 석유화학 등 공급과잉으로 부진의 늪에 빠진 업종들이 잇따라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 구조조정 가이드라인 7월 나와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 철강업계에서 일종의 구조조정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는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협의체를 만들어 논의 중”이라며 “보고서를 만드는 데 3개월가량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7월이면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안은 업계의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기업들이 결과에 대해 수긍할 수 있도록 외부의 공신력 있는 업체가 만들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맥킨지나 보스턴컨설팅그룹과 같은 글로벌 컨설팅 업체가 거론된다. 일본은 이미 산업경쟁력법에 따라 2014년부터 철강, 석유화학, 판유리 업종에서 업종별 수급 전망 등을 담은 보고서를 만들어 경제산업성에서 공표하고 있다.
보고서에는 열연강판, 냉연강판, 후판, 철근 등 철강제품별 글로벌 수급 전망과 이에 따른 적정 설비 등이 담길 예정이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개별 기업이 주주, 채권단 등과 협의해 설비를 감축하거나 인수합병(M&A) 등의 구조조정을 실시한다. 민간 주도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이끌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 철강산업 세계적 공급과잉
철강업종의 경우 공급과잉에 따른 경쟁력 악화로 이미 중국,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구조조정이 추진되고 있다. 대규모 장치를 설치해 생산하는 ‘장치산업’의 특성상 철강산업은 시장의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렵다.
지난해 세계 철강 생산량은 16억2000만 t으로 수요 15억1100만 t보다 1억900만 t이 초과한 상황이다. 세계 생산능력이 23억3000만 t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동률은 69.5%에 그친다.
올해도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중국 경제성장이 둔화된 데다 저유가로 인해 철강업계의 주요 수요 산업인 조선, 건설이 모두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올해 국내 철강제품 수요가 5580만 t으로 지난해 대비 0.6%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강관업계 상황이 여의치 않다. 세아제강, 현대제철, 휴스틸, 하이스틸 등 국내 업체들이 생산하는 유정용 강관은 대부분이 북미지역으로 수출된다. 지난해 셰일가스 개발 열풍으로 국내 업체들의 강관 수출이 증가하자 현지 업체들은 미국과 캐나다 정부에 잇달아 반덤핑 조사를 의뢰했다. 그 결과 캐나다에 강관을 수출하는 업체들은 8.8∼37.4%, 미국으로 수출하는 업체들은 9.89∼15.75%의 관세를 부과당했다.
지난해 주택 분양 증가세가 올해까지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에는 중국산 철근 수입량이 7만8000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2.2% 급증하며 가격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국내 업체들은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창사 이래 첫 순손실을 낸 포스코는 올해 35개, 내년 22개 계열사를 정리할 계획이다. 지난해 흑자 전환한 동국제강은 경북 포항 후판2공장과 계열사인 국제종합기계 매각을 추진하며 재무구조를 다지고 있다.
○ 구조조정 암초 여전해
원샷법으로 판은 만들어졌지만 철강업계 구조조정 과정에서 작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당장 유동성 위기로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는 동부제철만 해도 매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14년 10월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간 동부제철은 계속된 경영 악화로 지난해 10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돌입했고,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제3자 유상증자 방식을 통한 동부제철 매각에 착수했다. 하지만 올해 1월 29일 인수의향서(LOI) 접수 마감일까지 신청자가 전혀 없어 매각이 불발됐다.
중국 등 외국에 내다파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중국이나 일본 철강업체들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어 매각이 쉽지 않다. 채권단 관계자는 “1월 매각 추진 때도 일부 외국계 펀드 외에는 동부제철에 관심을 갖는 곳이 없었다”며 “글로벌 철강업계의 불황이 호전되지 않는 한 매각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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