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웨어러블 로봇의 세계]
2008년 노약자 근력 보조용 ‘헥사’가 시초…포스코, 현장 투입해 年 129억 생산성 높여
국내 웨어러블 로봇 연구는 2000년대 들어 대학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웨어러블 로봇이 해결책을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웨어러블 로봇은 작업능률을 높여 노동인구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근골격계 질환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최근에는 웨어러블 로봇의 다양한 활용성에 주목한 기업들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상용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산학연 참여로 웨어러블 로봇 상용화 ‘성큼’
국내 웨어러블 로봇 연구의 선구자는 한창수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팀이다. 국내 대부분의 웨어러블 연구자가 한 교수팀과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다. 한 교수팀은 2008년 노약자나 장애인의 근력을 보조해 주는 외골격 로봇 ‘헥사(HEXAR)’를 처음 선보였다. 2011년에는 이 로봇을 상용화하기 위해 ‘헥사시스템즈’라는 기업을 설립해 상지(팔), 하지(다리) 및 전신착용형 로봇을 출시했다. 상지근력증강 로봇은 간단한 동작으로 최대 40kg의 물체를 들어올릴 수 있고 하지근력증강 로봇은 최대 40kg의 짐을 등에 지고 시속 6.5km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 로봇의 일부 기능을 활용해 어깨나 무릎재활기구도 개발해 상용화에 앞장서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10년 국책 과제로 시작된 ‘착용식 근력증강로봇 기술 개발’ 사업을 주관하며 웨어러블 로봇 개발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완료된 이 사업을 통해 현대자동차는 전기식(EWR) 근력증강 로봇을, 현대로템은 유압식(HWR) 로봇을 개발했다. 전기식 로봇은 자동차 조립에 쓰일 수 있고, 유압식 로봇은 전동차 문이나 에어컨 등 80kg의 물체를 들고 시속 3km로 움직일 수 있다.
특히 현대로템은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허리나 무릎에 착용하는 보조 로봇(RMX)도 개발했다. 무게가 3∼4.5kg으로 가볍고 착용이 간편한 데다 작업자의 허리나 무릎 관절에 걸리는 부하를 최대 50%까지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및 연구기관에서 실험적 연구 역시 계속되고 있다. 한양대 한 교수팀 외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김기훈 실감교류로보틱스 연구센터 연구원팀이 팔 움직임을 돕는 로봇 ‘큘렉스(KULEX)’를 개발했다. 국민대 조백규 기계시스템공학부 교수팀은 사람이 입고 있지 않아도 자율 보행이 가능한 웨어러블 로봇 ‘쿠도스(KUDOS)’를 개발 중이다. 장애인이 무선조종장치로 로봇을 호출하면 침대 앞까지 스스로 걸어오는 로봇이다. 조 교수는 KAIST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인간형 로봇 ‘휴보’ 개발에 참여한 바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미래형 웨어러블 로봇 ‘스마트슈트’ 개발에 한창이다. 방위산업체 LIG넥스원도 병사용 웨어러블 로봇 ‘렉소(LEXO)’를 개발 중이다.
현장 효과 확인했지만 표준화 등은 과제
웨어러블 로봇은 일부 산업 현장에 적용돼 효과를 검증받았다. 포스코는 용광로 내화물을 쌓는 작업에 웨어러블 로봇을 도입해 연간 129억 원의 생산성 향상 효과를 거뒀다. 기존에 126일 걸리던 작업 기간을 72일로 43% 감축해 121억 원을 줄였고 총 6048명을 투입해야 했던 인력을 2160명으로 줄이며 8억 원을 절감했다. 실제 작업에 참여하는 인력들에게서도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하고 안전사고를 방지하는 등 근무환경 개선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우조선해양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개발한 유압구동식 로봇 ‘하이퍼(HyPER)’를 토대로 조선소 현장에 맞게 최적화해 작업에 투입했다. LNGC 단열박스 설치작업에 이 로봇을 활용한 덕분에 3명 1개 조로 운영하던 방식을 로봇 2대를 착용한 2명이 1개 조로 움직이는 방식으로 바꿀 수 있었다.
국내 웨어러블 로봇 기술은 몇 년 사이에 급성장하며 미국 일본 등 주요 로봇 개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만 상용화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군 각 분야에서 필요에 따라 로봇 개발에 집중하고 있지만 핵심부품 같은 기반기술은 여전히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점도 로봇 산업 전반의 과제로 남아 있다. 수출을 고려한다면 표준화 문제도 극복해야 한다.
한 교수는 “국내에선 아직 로봇 개발에 집중하고 있어 표준화를 위한 국제회의에 꾸준히 참여할 여력이 없었다”며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상용화의 걸림돌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