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7남매 중 셋째인 그는 1974년 제대일이 다가오자 뭘 해서 먹고살지 걱정이 됐다. 그때 친하게 지내던 후임병이 아이디어를 줬다. 학습지 대리점을 해보라고. 외출을 나가 가능성을 확인했다. 제대 5일 후 부친의 도움을 받아 고향(경남 고성군)에서 초등학생 일일 학습지 지국을 20만 원에 인수했다. 당시 23세였다.
회원을 늘리기 위해 낡은 자전거로 비포장도로를 하루 100km씩 달렸다. 다른 지국과 달리 학습지를 채점한 뒤 정성껏 개인지도까지 해줬다. 학생들의 성적이 오르자 입소문이 났다. 90명이던 회원이 두 달 만에 550명으로 늘었다. 단기간에 전국에서 가장 많은 회원을 확보했다. 지국을 팔았던 사람이 100만 원에 다시 사겠다고 제의했으나 친형에게 넘겼다.
그는 트럭에 잡화를 싣고 다니며 구멍가게에 공급하다 부산에서 신발 깔창을 만들어 팔았다. 26세 때 펜팔로 아내를 만나 보증금 3만 원에 월세 7000원인 슬레이트집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1980년 세계 금연의 해를 맞아 금연파이프를 만들어 거리 판매에 나섰다. 하얀 모자에 하얀 장갑을 끼고 담배 끊는 파이프라고 선전하자 고객이 몰렸다. 주문이 전국에서 쇄도해 6개월 만에 6000만 원이 넘는 큰돈을 벌었다. 자만심에 돈을 물 쓰듯 하며 장난감과 주방용품 사업을 벌였다. 은행 대출까지 받아 많은 돈을 투자했으나 예상만큼 안 팔려 무일푼이 됐다.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자.”
굴하지 않고 사채를 빌려 헐값에 나온 조끼 5000장을 사서 리어카에 싣고 다니며 팔았다. 다시 밑천을 모아 새 사업 아이템을 모색했다. 그러다 1984년 저주파 치료기를 만드는 천호물산을 세워 건강사업에 뛰어들었다. 주인공은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65)이다.
2년 뒤 교통사고로 왼팔이 부러졌다. 뼈가 안 붙어 애를 태우자 지인이 식용 달팽이를 먹어 보라고 권했다. 달팽이를 달여 먹고 효험을 본 그는 달팽이농장을 사들인 뒤 종자를 분양해 재미를 봤다. 1991년 회사 이름을 천호식품으로 바꾸고 ‘달팽이 엑기스’를 첫 건강식품으로 내놨다.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잘 안 팔렸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KBS를 수시로 찾아가 PD들에게 인사했다. 곧 망하겠다고 생각할 즈음 ‘6시 내 고향’에 소개됐다. 전화기에 불이 날 정도로 주문이 쏟아졌다.
“본업 아닌 일에 손대지 않는다.”
1994년 부산에서 현금 부자 100명에 들 만큼 잘나갔다. 찜질방, 황토방 체인사업 등을 한꺼번에 벌였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가맹점 해지가 잇따랐다. 하청업체에 줬던 어음이 무더기로 돌아왔다. 회사는 물론이고 집까지 경매에 넘어갔다. 직원들이 떠나자 자살 충동까지 느꼈으나 어렵게 이겨냈다.
공장에 재고로 있던 ‘강화사자발쑥 진액’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가 선물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전당포에 맡기고 받은 130만 원으로 전단지를 만들어 돌렸다. 18만 원 하던 60팩들이 한 박스를 5만 원에 팔며 여관에서 소주와 소시지로 숙식을 해결했다. 대학원 동기인 탤런트 이순재 씨에게 사정사정해 나중에 돈을 벌어 주는 조건으로 광고모델을 부탁했다. 매출이 늘어 2년 만에 빚 23억 원을 갚고 재기했다. 본업에 전념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듬해 ‘사슴한마리’를 내놓고 1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남자에게 참 좋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
2000년 ‘산수유환’을 출시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선물로 보냈더니 친필 사인이 든 감사 답장이 왔다. 이런 내용을 담은 광고를 해 히트를 쳤다. 신제품 ‘산수유1000’ 홍보 방안을 내놨다가 직원들에게 떠밀려 TV 광고에 출연했다. 사투리에 어설픈 연기였으나 큰 인기를 끌며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김 회장은 천호식품을 미국 일본 중국 등 13개국에 수출하는 연매출 1000억 원대의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제조 특허를 받은 달팽이, 산수유, 마늘, 양파를 비롯해 다양한 자연 원료로 180여 가지 건강식품을 생산하고 있다.
김 회장은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일어난 경험을 토대로 경영난을 겪는 중소기업들을 돕기 위해 최근 마케팅컨설팅회사를 세웠다. 많은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한국의 워런 버핏’이 되겠다는 것이 그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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