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기업 ‘담합 제재’ 타깃으로
美-EU 이어 中도 제재 강화… 비관세장벽 높여 자국산업 보호
국내기업들 수출 부진속 이중고… 공정위는 전담 인력 12명뿐
《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출 절벽’에 몰린 국내 주요 기업들이 해외 경쟁당국으로부터 거액의 과징금까지 물게 돼 이중고(二重苦)를 겪고 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EU)뿐만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도 글로벌 기업에 대한 감시와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거액의 과징금을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 ‘비관세장벽’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해외에서 앞다퉈 글로벌 기업에 제재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LG전자와 일본 히타치(日立)의 유럽 합작법인 HLDS는 지난해 유럽연합(EU) 유럽위원회 경쟁총국으로부터 광디스크 드라이브 제품(ODD)의 담합 관련 조사를 받고 최근 3712만1000유로(약 49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앞서 현대자동차도 지난해 인도와 스페인에서 잇따라 수백억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인도경쟁위원회(CCI)는 현대차가 인도 시장에서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며 42억 루피(약 766억 원)의 과징금을 물렸고 스페인 국가시장경쟁위원회(CNMC)도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현지 시장 정보 등을 교환했다는 이유로 약 1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처럼 해외에서 글로벌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 ‘비관세장벽’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가뜩이나 글로벌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수출기업들은 이중고를 겪는 셈이다.
30일 공정위에 따르면 1996년 이후 해외에서 국내 기업이 담합으로 적발돼 미국, EU 등 8개국으로부터 부과받은 과징금 총액은 3조4100억 원에 달했다. 이 중 1조5881억 원의 과징금이 LG그룹의 몫이었다.
LG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여러 나라의 주요 타깃이 돼 왔다. 미국이 처리하는 담합사건의 90% 이상이 국제 담합이다. 특히 2005∼2012년까지 국제 담합사건에 부과한 총 과징금 50억 달러(약 5조8500억 원)의 69%가 한국 일본 대만 등 수출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3개국에 집중됐다.
주목할 점은 중국과 브라질 등 신흥국에서도 글로벌 기업에 대한 엄격한 법 집행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2013년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의 액정표시장치(LCD) 가격 담합을 제재했다. 이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반독점법을 집행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공정위가 해외 기업의 담합을 적발해 과징금을 부과한 규모는 2002년 이후 7546억 원에 불과하다. 공정위는 최근 직제 개정을 통해 국제카르텔과 정원을 12명으로 늘렸지만 미국(약 200명), EU(약 100명)에 비해 턱없이 인력이 부족하다. 전충수 공정위 국제카르텔과장은 “EU처럼 과징금 제재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높아지는 과징금 비관세장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민관 협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공정위가 국내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국제 담합 예방을 위한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통상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경제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경제외교’ 스킨십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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