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땀방울… 싹 트는 ‘SK의 신약 주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5일 03시 00분


판교 SK바이오팜연구소 가보니

SK바이오팜 연구소 연구원이 신약후보물질을 개발하기 위해 실험용 비커에 담긴 액체 상태의 합성물질을 관찰하고 있다. SK바이오팜 제공
동그란 실험용 비커에 담긴 액체 상태 신약후보물질에서 수분을 빼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탄소와 수소를 중심으로 결합된 화합물이 인간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구조인지는 자기장을 이용해 확인했다. 가능성을 인정받은 물질은 실험실로 옮겨져 동물에게 투여됐다. 동물 세포만 떼어내 합성물질을 투여했을 때 발생하는 전기 작용을 살피는 연구도 진행됐다. 1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역로 SK바이오팜 연구소 연구원들은 무한한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신약 개발 가능성과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다. SK바이오팜이 연구소를 언론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미래를 위한 ‘승부수’


24년이 걸렸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지난달 SK바이오팜이 독자 개발한 뇌전증(간질) 치료제 ‘YKP3089’의 약효가 충분히 확인돼 임상3상에서 약효 시험 없이 안정성 시험만 진행해도 된다고 발표했다. 신약 최종 승인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SK바이오팜이 1993년 이후 38만여 개의 화합물을 만들고 그중 약효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2만8000여 개의 신약후보물질을 끊임없이 실험한 결과였다.

1993년 대전 유성구 SK 대덕기술원 소속 연구개발(R&D)팀 중 하나로 출발한 SK바이오팜에 대한 그룹 안팎의 시선은 차가웠다. 해가 지날수록 투자 규모는 커졌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의구심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최 회장은 오히려 바이오·제약 사업이 미래 핵심 성장 사업이라고 판단했다. 최 회장은 2007년 SK바이오팜을 “그룹 차원의 미래 사업으로 키울 것”이라며 지주회사 신약개발사업부로 편성하고 2011년 독립법인으로 자립시켰다. 단기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최 회장의 승부수는 통했다. FDA는 YKP3089 최종 승인을 위한 담당자를 따로 배정하고 개발 과정을 SK바이오팜과 직접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임상 데이터 결과만을 두고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FDA로서는 이례적인 조치였다. SK바이오팜이 미국 뉴저지 주에 임상개발센터를 구축하고 임상팀을 직접 운영한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신약개발책임자인 조정우 SK바이오팜 부사장은 “제약회사의 능력은 결국 FDA와의 협상 능력이 좌우한다”며 “지주회사에 편입된 이후 지원된 아낌없는 투자를 통해 만들어진 인적, 물적 시스템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 ‘신약 주권’ 지키는 글로벌 종합제약회사로 도약

우직한 투자를 바탕으로 SK바이오팜은 국내 최초로 신약 개발부터 마케팅 및 판매까지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글로벌 종합제약회사로 성장하는 게 목표다. 현재 국내 제약회사들은 복제약 등 개발에 주력하거나 임상 단계에서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을 수출하는 데 그치고 있다. 글로벌 종합제약회사로 성장하기 위해 SK바이오팜은 다른 제약회사나 대학 및 연구소들과 협업을 활성화하고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1일 본사도 대전 대덕연구단지에서 성남시 판교신도시로 옮겼다. SK바이오팜의 계획대로 신약을 개발한 뒤 자체적인 마케팅을 통해 판매를 하면 매출의 75% 이상을 국내로 환원시킬 수 있는 ‘신약 주권’을 갖게 된다. 국내외 제약업계에서는 SK바이오팜이 YKP3089를 통해 미국에서만 연간 매출 1조 원, 영업이익 5000억 원 이상을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 최다인 15개 신약후보물질의 임상시험승인(IND)을 FDA로부터 확보한 SK바이오팜은 현재 뇌전증 등 중추신경계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신약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난치성 환자가 많아 신약 개발에 대한 시장 수요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 역량을 제한할 생각은 없다. 조 부사장은 “그동안 쌓인 역량을 바탕으로 중추신경계 질환뿐 아니라 항암제 등 신규 질환 영역의 신약 개발을 통해 2020년까지 기업가치 10조 원 규모의 글로벌 바이오·제약 회사로 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남=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최태원#sk#신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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