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천기술 있어야 세계서 경쟁… 우리만의 효모로 우리 빵 만들자”
1만종이상 토종미생물자원 분석… 토종효모 발굴해 제빵 상용화 성공
“2030년 매출 20조원 달성 목표”
“다른 회사는 절대 못했을 겁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릴 수도 없고…. 허영인 회장의 의지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그룹이 토종 천연 효모를 발굴해 20일 국내 최초로 이 효모를 이용한 빵을 선보인 데 대해 한 식품회사 관계자가 보인 반응이다. 그만큼 험난한 과정이었을 것이란 판단이 담겨 있다. 실제로 이 연구에 참여한 서진호 서울대 식품생명공학부 교수는 “백사장에서 다이아몬드를 찾은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 천연 효모 상용화 연구를 허영인 SPC그룹 회장(사진)이 총지휘했다. 허 회장은 2005년 SPC식품생명공학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수천 년 동안 우리 땅에서 살아온 신토불이 천연 효모를 찾아보자”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토종 효모 발굴 프로젝트에는 11년이 소요됐다. 그동안 1만 종 이상의 토종 미생물자원을 분석했고 투입된 연구비용만 160억 원에 이른다.
사실 빵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효모는 국산이 아니어도 대체재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이스트다.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많은 제빵업체들이 사용한다. 가격도 SPC가 발굴한 천연 효모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러다 보니 왜 굳이 많은 돈을 들여 천연 효모를 만들어야 하느냐는 의문이 내부에서 나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허 회장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독자적인 원천 기술을 가져야 한다”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전통 효모로 만든 빵은 부드러움이 오래 유지되는 것도 강점이다. 문제는 이런 효모를 규격화해 전국의 파리바게뜨에 공급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허 회장은 연구비를 아끼지 않았고 기간도 제한하지 않았다. 허 회장의 뚝심에 회의적인 시각은 사라졌다. 언젠가는 우리의 효모로 빵을 만든다는 목표 의식만 굳게 자리 잡았다.
허 회장은 오래전부터 단기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연구개발(R&D)에 힘써왔다. 그는 1983년 국내 제빵업계 최초로 연구소를 세웠다. 그룹 설립 환갑을 맞은 2005년 식품생명공학연구소를 만든 후 2009년 서울대에 SPC농생명과학연구동을 세우며 연구소를 확대했다. 허 회장 스스로도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1981년 삼립식품 사장이 된 후 미국제빵학교(AIB)로 유학을 떠나 다시 제빵의 기초를 익혔다. 온도계를 휴대한 채 수시로 파리바게뜨 매장과 연구소를 찾아 반죽과 제빵실의 온도를 점검했다. 맛있는 빵이라면 배가 불러도 먹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일부러 식사 직후 신제품 테스트를 하기도 했다.
허 회장의 의지는 그룹의 설립 정신과 맞닿아 있다. SPC의 모태는 1945년 허 회장의 아버지인 고 허창성 명예회장이 황해도 옹진에 세운 빵집 ‘상미당’이다. 이후 서울로 사업장을 옮긴 후 삼립식품 등으로 회사가 커지고 파리바게뜨 매장이 전국 곳곳에 생기는 동안 허 회장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맛있는 빵을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실천해왔다.
천연 효모 상용화는 시작에 불과하다. 매년 R&D에 500억 원씩 투자하는 SPC그룹은 천연 효모와 같은 미생물을 산업화하는 바이오 신소재 연구센터를 건립할 예정이다. 허 회장은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바탕으로 2030년에는 현재 매출 규모의 4배인 20조 원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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