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국내 자동차 업계를 보고 ‘산업만 있고 문화는 없다’고 한다. 자동차 문화의 꽃은 모터스포츠인데,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 관중석은 거의 텅텅 비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급속한 외적 성장으로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 대국이 됐지만, 그 하드웨어를 채우는 소프트웨어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올해도 봄이 오고 모터스포츠 시즌이 시작됐다. 국내 모터스포츠의 양대산맥인 코리아스피드페스티벌(KSF)과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가 대장정에 돌입했다. KSF는 지난 주말 전남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KIC)에서 1라운드를 마쳤고, 슈퍼레이스는 경기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23일 개막한다.
하지만 이들 대회의 시작을 바라보는 기자의 마음은 가볍지만은 않다. 공들여 준비한 대회 관계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올해도 이들 대회는 ‘업계잔치’로만 끝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KSF가 인천 송도 도심서킷에서 개최할 2라운드나 슈퍼레이스가 용인과 중국에서 진행할 라운드에는 사람이 조금 몰려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송도에 오는 사람들은 모터스포츠 팬이라기보다 현대자동차가 함께 마련하는 ‘더 브릴리언트 모터페스티벌’에 가족 나들이 겸 오는 사람들이고, 중국 관객은 그야말로 ‘남의 나라’ 얘기다. 8년 만에 용인에서 치러지는 라운드가 기대되긴 하지만, 아직 시설 측면에서 많은 부분이 갖춰지지 않아 걱정스럽다.
영암과 강원 인제 스피디움에서 열릴 나머지 라운드는 여느 때처럼 레이싱팀 관계자와 선수의 가족과 친구, 차보다는 주로 레이싱 모델을 찍으러 오는 기자와 블로거들로 채워질 공산이 크다. 슈퍼레이스의 경우에는 연예인 레이서를 보러 오는 일본인 관광객이 대다수다.
모터스포츠 업계가 대회 개최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도를 해볼 때가 아닌가 싶다. 근본적으로는 인구가 많은 수도권 근처에 제대로 된 서킷이 있어야 하겠지만 용인 서킷을 개선하는 수준 이상으로는 힘든 상황이다. 연예인이 아니라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제대로 된 ‘깜짝 스타’가 나오면 좋겠지만 얇은 국내 선수층을 생각해볼 때 당장은 힘들 듯하다.
그래도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보는’ 대회보다는 선수 옆에 일반인이 타고 서킷을 체험하는 ‘택시’ 등 이벤트를 통해 ‘체험하는’ 부분을 늘리고, 성장하고 있는 동호회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풀뿌리’ 기반을 차츰 넓혀가야 한다. 국가 대항전 등 참가하는 팀들의 대결구도를 더 명확히 해서 응원할 팀을 고를 수 있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시야를 넓게 보면 KSF와 슈퍼레이스가 손을 잡고 판을 키우는 것도 가능하다.
몇 년 뒤면 제대로 된 첫 국산 고성능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차의 ‘N’이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N이 우수하다고 해도 해외에서만 활약한다면 의미는 반감되지 않을까. 이제라도 제대로 된 모터스포츠 문화를 만들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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