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전제는 신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업 중에서도 사기와 같은 ‘반체제 활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규제당국도 기업의 사기 행태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지만 작정하고 속이는 경우까지 포착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거짓말을 탐지하는 일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 언어를 통해 드러나는 ‘거짓의 단서’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애리조나대, 듀크대, 올버니대 및 럿거스대의 공동 연구진은 거짓을 나타내는 언어 단서를 탐구하기 위해 투자자 전화 회의(콘퍼런스콜)의 녹취록을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은 기업으로 선택했다. 이런 기업을 택해야 나중에 실제 사기로 드러난 결과를 놓고 기업이 투자자들을 어떤 식으로 속였는지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녹취록은 6차례의 전화 회의를 통해 남성 최고경영자(CEO)와 여성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발표한 내용과 질의응답 내용을 담고 있다. 진술문은 1114건이었는데 884건은 CEO가, 230건은 CFO가 언급했다. 684건은 발표문이었고 466건은 질의응답이었다.
분석 결과 의외의 사실이 포착됐다. 사기로 밝혀진 부분이 더 길고 더 상세하게 언급됐다. 거짓말을 할 때 더 길게 말하는 양상은 발표 내용과 질의응답에서 일관되게 나타났다. 반면 상세하게 언급하는 방식은 발표자, 내용 및 발표 양식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CFO가 사전 준비한 발표문을 언급할 때는 상세하게 언급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질의응답에서는 구체적인 언어의 사용이 줄었다.
모호한 표현의 사용은 사전 준비한 발표 내용과 즉각적으로 이뤄지는 질의응답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 거짓말을 할 때 질의응답에서는 모호한 표현이 많았지만 발표문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거리를 두는 표현의 사용도 발표 내용과 질의응답이 달랐다. 거리를 두는 표현이란 ‘나(I)’ 같은 일인칭 대명사는 적게 사용하고, 타인을 지칭하는 대명사를 많이 쓰며, 수동태 문장 및 미래시제 문장을 더 많이 사용하는 정도를 말한다. 거짓말을 할 때는 사전 준비한 발표 내용에서 거리 두기 표현의 사용이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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