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미칼 사업부문 매각으로 미래를 위한 성장 재원을 확보했고, 전기차 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힘찬 시동을 걸게 됐다.”
조남성 삼성SDI 사장이 1월 임시주주총회에서 한 말이다. 삼성SDI는 2월 케미칼 사업부문을 ‘SDI케미칼’로 물적 분할했다. 올해 상반기(1∼6월) 내 롯데케미칼에 지분 90%를 매각하고, 3년 내에 나머지 10%를 매각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마련하는 재원은 약 2조5850억 원. 삼성SDI는 이 재원을 울산과 중국 시안(西安) 전기차 배터리 공장 증설과 신규 유럽 생산기지 건설 등에 투입할 예정이다.
삼성SDI의 이런 판단은 ‘전략적 구조조정 및 신성장동력 창출’이라는 ‘투트랙 전략’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사례다. 수년간 ‘캐시카우’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화학사업 부문을 과감히 정리하고, 당장 수익을 내지 못해도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전기차 배터리를 집중적으로 키워 향후 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 “신성장동력 결정하고, 나머지는 재편 노력 필요”
이번 해운·조선업 구조조정 사례를 두고 경제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투트랙 전략의 필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상처가 곪아 썩은 뒤에야 정부가 메스를 드는 지금과 같은 방식의 구조조정이 되풀이되어서는 미래가 없다고 보고 있다. 기업들이 신성장동력이란 장기적 플랜 아래서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한국경제연구원 김윤경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이미 ‘좋지 않은 회사’라고 못 박았을 때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제값을 받을 수 없다”라며 “과거의 성장엔진이 동력을 잃기 전에 장기적으로 신성장동력 사업을 결정하고, 그 외의 사업은 상시 구조조정을 통해 재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산업연구원 장석인 선임연구위원은 “2010년 이후부터 해운, 조선업이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랐지만 성장 둔화세가 가파르지 않은데 구조조정은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외면받았다”며 “한국 경제 상황에서는 구조조정이 핵심 주력산업 분야에서 철수한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짙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한국 성장엔진 이미 고령화”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이 국내 10대 수출상품이 된 지 올해로 39년째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올해 10대 그룹의 경영전략에도 ‘수익성 개선’ ‘경영 내실화’ ‘성장 모멘텀 회복’ 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키워드들이 포함돼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지정한 5대 취약업종을 주력으로 하는 포스코, GS, 현대중공업 등은 단숨에 업종 전환이 어려울지 몰라도 무게중심을 점차 차세대 산업으로 옮겨가야 한다”며 “이미 고령화된 과거 성장엔진에 더 이상 매달려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정부가 산업 대개혁의 핵심 정책도구로 삼고 있는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이하 기활법)’의 실무지침을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활법은 기업이 생산성 향상과 재무구조 개선 목표를 설정하고 사업 재편을 추진하는 경우 각종 특례를 부여하는 법으로 올해 8월 시행 예정이다. 이 법은 합병·분할 등 조직 개편 절차를 간소화하고 요건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또 소규모 분할 제도 활용과 완화된 소규모 합병 요건으로 사업 재편을 가속화할 수 있다.
○ 신산업 경쟁력 낮은 한국
글로벌 기업들은 세계 경기의 불확실성에 직면해 끊임없이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신산업에 진출하고 있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은 지난해 프랑스 ‘알스톰’의 전력 및 에너지 사업 부문을 97억 유로(약 12조5897억 원)에 인수했다. 독일 지멘스는 전력화, 자동화 및 디지털 분야에서 경쟁력을 키운다는 목표하에 1월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 ‘시디어댑코’를 인수했다.
반면 한국은 신산업 경쟁력이 전반적으로 낮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스마트카, 융복합소재, 융합바이오 및 헬스케어, 사물인터넷(IoT) 등 미래제조업 4개 분야의 산업경쟁력을 조사한 자료(2015년)에 따르면 미국을 100으로 할 때 한국의 수준은 68.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55.9)보다는 앞서지만 일본(81.5)보다는 한참 뒤처진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신산업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신산업 규제 트라이앵글로 △정부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사업을 착수·진행하도록 하는 사전규제 △정부가 정해준 사업영역 이외의 기업 활동을 불허하는 포지티브 규제 △융·복합 신제품을 개발해도 인증기준 등이 마련되지 않아 제때 출시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조성훈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주도해 신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과거에) 끝난 얘기”라며 “그보다는 기업이 기업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적극적으로 철폐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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