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행동계획은 다소 미흡하지만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는 게 중요하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면돌파할 필요가 있다. 신산업 육성을 위해선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다 끌어 모아야 한다.”
정부가 최근 잇따라 내놓은 부실기업 구조조정 계획과 신산업 육성 정책과 관련해 전직 경제수장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10명의 자문단은 29일 이 같은 평가를 내렸다. 정부가 환부를 과감히 도려낸 뒤, 필요한 경우 국책은행 자본 확충이나 추가경정예산을 동원해서라도 적극적인 구조조정 자금 지원 및 실직자 대책을 추진해야 정부 대책의 실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신산업 육성을 위해선 기업이 적극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불확실성을 해소시켜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 “해운업 구조조정 원칙 천명 잘한 일”
전문가들이 ‘4·26 구조조정 방안’에서 가장 높게 평가한 부분은 해운업 구조조정의 원칙이 제시됐다는 점이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해운 구조조정의 핵심은 용선료 협상인데, 협상 날짜를 5월 중순으로 못 박으며 해운사에 확실한 메시지를 던진 부분은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김도훈 산업연구원 원장은 “과거에는 바로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텐데 일단 시장에 맡긴 뒤 자율협약을 유도하겠다고 한 점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빅딜 신중론’을 편 것에 대해서도 “정부가 인위적 합병이나 빅딜이 없다고 밝힌 부분에 전적으로 찬성한다”며 긍정적인 견해를 내놨다.
다만 빈사 상태에 빠진 해운업 외에 조선 등 다른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이 원론적인 언급에 그친 점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자칫 유동성 위기가 코앞에 닥칠 때까지 손을 놓고 있겠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수년 전부터 구조조정을 하자는 말이 나왔고, 조선업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여전히 정부가 원론적 입장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 “구조조정의 정치이슈화 경계해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발표한 대책의 효과가 극대화되려면 무엇보다 정치권의 간섭이 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인원 감축이 불가피한 구조조정에 정치권은 난색을 보이고 이런저런 요구를 하겠지만 이를 다 받아주다가는 그나마 애써 마련한 정부의 계획마저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외과수술을 하는데 병원장이나 보호자가 달려와서 간섭하면 의사가 손이 떨려 수술을 할 수 없다”며 “큰 그림은 기획재정부가 그리겠지만 구조조정 수술 집도는 금융위원회에 믿고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 재원 마련을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데에는 의견을 모았지만 방법론은 각기 달랐다. 최 전 장관은 “유동성을 늘리기 위해 한국은행을 이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정부 출자로 국책은행에 실탄을 지원하는 방법이 구조조정에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반면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제학)는 “정부 재정도 동원하고 한국은행까지 관련 주체들이 분담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정식 연세대 교수(경제학)도 “구조조정 재원을 재정으로 충당할 경우 국가 부채가 늘어나고 경기 부양을 위한 확대 재정정책을 쓸 수 없다”며 “결국 한국은행이 나서야 하지 않겠냐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가 자금을 대고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구체적인 행동계획은 철저히 민간 전문가에게 맡겨야 신속하고 효과적인 구조조정이 완성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런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인위적 빅딜 정책에 따라 LG반도체와 현대전자가 합병해 만들어진 하이닉스를 대표 사례로 꼽았다. 정부가 개별 기업의 합병과 인수 주체까지 결정하면서 구조조정 속도는 빨랐지만 결과적으로 하이닉스는 10년 넘게 부진에 빠졌고 현대그룹과 채권단을 오가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미국은 정부가 제너럴모터스(GM)를 구조조정하자는 판단을 내렸지만, 사업 재편을 하고 재상장하는 등의 과정은 철저히 민간에 맡겼다”며 “권한과 책임을 민간에 주면서 과감한 행동 결정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 “신산업 파격적 인센티브 진일보한 정책”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신약 등 신산업 분야에 기업들이 투자에 나설 경우 정부가 세제 예산 금융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한 ‘4·28 신산업 육성 대책’의 정책방향에 대해선 상당수 전문가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현 기재부) 장관은 “창조경제라는 모호한 구호를 구체화시켜 신산업을 골라내고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정책은 진일보한 것”이라며 “일자리가 생기는 분야는 신산업밖에 없는 만큼 기업이 잘할 수 있는 틀을 정부가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의도한 효과를 내기 위해선 추가적인 지원책이 더 필요하고 앞으로 정부가 기업의 투자 여건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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