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이 이란에서 456억 달러(약 52조 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를 따내면서 국내 산업계 전반에 ‘이란 특수(特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란 경제 제재 전인 2011년 174억 달러에서 지난해 61억 달러로 3분의 1로 토막 났던 한-이란 교역 규모가 단숨에 회복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올해 들어 이란 시장의 빗장이 열린 이후 중국, 일본, 유럽 등의 공세에 뒤처졌던 프로젝트 수주 경쟁에서도 결정적인 반전의 기회를 잡게 됐다. ○ 52조 대박…인프라·에너지 수주 기회 열려
2일 청와대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방문을 계기로 30건, 최대 456억 달러 규모 프로젝트에 대해 가계약과 양해각서(MOU) 등을 체결했다.
우선 이란의 철도 도로 등 인프라 건설에 한국 기업이 본격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교두보가 마련됐다. 철도 78억6000만 달러, 도로 15억 달러, 수자원 27억6000만 달러 등 121억2000만 달러의 수주 기회가 열렸다. 대림산업은 이스파한과 아와즈를 잇는 541km의 철도 사업(53억 달러)에 대한 설계·구매·시공(EPC) 일괄 수주 가계약을 맺었다. 대우건설과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참여하는 15억 달러 규모의 테헤란 쇼말 고속도로 건설 사업 MOU도 성사됐다. 수자원 분야에서도 베헤시트아바드 댐 및 도수로 사업(27억 달러) 등의 수주 가능성을 높였다.
안종범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인프라 사업의 양국 간 협력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이란은 제6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2016∼2020년)을 통해 철도, 항만 등 인프라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향후 더욱 긴밀한 협의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유(116억 달러) 가스(89억 달러) 석유화학(41억 달러) 조선(12억 달러) 등의 분야에서도 최대 258억 달러 규모의 수주가 기대된다. 반다르자스크 지역에 초중유 생산 정유시설을 건설하는 바흐만 정유시설 프로젝트(1, 2단계 100억 달러)가 대표적이다. 이란이 천연가스를 수출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이란∼오만 심해저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에도 한국이 참여하게 됐다. 발전 부문에서도 대림산업이 19억 달러 규모 바흐티아리 수력발전 공사 가계약을 맺는 등 58억 달러어치의 성과를 거뒀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이란의 전력 수요는 연평균 5.5%씩 늘고 있고 특히 노후한 발전·송배전 설비 확충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250억 달러 실탄 지원…보건의료 등 수출전선 확대
이란 진출의 최대 난관인 금융 난맥을 해소하기 위해 국책 금융기관이 250억 달러에 이르는 금융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이 이란 중앙은행 상업은행과 함께 150억 달러를 지원한다. 한국무역보험공사도 이란 경제재정부와 약정을 맺고 10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단일 국가 투자에 대한 금융 지원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이란이 한국 기업과 인프라 사업 계약을 체결하면 수출입은행이나 무역보험공사가 이란 정부에 사업비를 빌려주는 것이다. 경제 제재가 해제됐지만 당장 사업비가 없어 대규모 인프라 사업 계약을 체결하기 어려운 만큼 이란에 적극적인 금융 지원을 해 한국 기업의 수주 가능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보건·의료 분야에선 17억 달러 규모의 6개 병원 건설 사업과 1억5000만 달러 규모의 의료생산단지 구축 사업이 추진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시스템 수출도 추진하기로 했다. 병원 건립 등 한-이란 보건의료 협력 강화로 향후 5년간 최대 3조 원의 경제적 성과가 있을 것으로 보건복지부는 추산했다.
한류 등 문화산업 진출의 물꼬도 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포스코건설은 이란 교원연기금공사와 협력해 한류 문화 복합 공간인 ‘K타워’를 이란에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한국에는 이란을 상징하는 ‘I타워’가 들어선다. 유무선 통신 인프라와 스마트시티, 사물인터넷(IoT), 5세대(5G) 이동통신 등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전 분야에 대한 전면적 협력도 확대된다.
○ 본계약 안 되면 ‘일회성 이벤트’ 그칠 수도
하지만 재원 조달 등 구체적인 지원이 이어지지 않으면 이번 발표가 자칫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내세우는 성과 대부분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MOU 수준이기 때문이다.
중국, 일본, 유럽 등 각국 정상이 앞다퉈 이란을 찾고 있는 등 이란을 향한 국제사회의 ‘러브콜’이 치열해 본계약 성사를 무작정 낙관하기는 쉽지 않다. 유가가 회복되지 않으면 경제 제재의 여파로 재정이 어려운 이란 정부가 공사 발주를 늦추거나 취소할 수도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란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만 금융 지원 불확실성, 달러화 거래 불가능 등 리스크도 많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이 프로젝트 자금을 상당 부분 부담하기로 하면서 국내 구조조정 등으로 자금 부담이 큰 국책은행의 리스크가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안 수석은 “이번에 발표한 사업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한 것이 아니고 거의 확실시되는 것만 보수적으로 밝힌 것”이라며 “금융 지원도 이란 정부의 보증을 받은 사업만 포함하기 때문에 위험이 그리 높지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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