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 및 채권단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옴에 따라 부실기업의 처리와 재생 작업을 민간이 주도적으로 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사모펀드(PEF)와 구조조정전문회사 등 국책은행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민간 금융사들이 조선, 해운 같은 중후장대 산업분야 구조조정의 마중물 역할을 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최근 금융계에서 민간 주도의 구조조정 방식이 계속 거론되는 것은 채권단 위주의 기업 구조조정이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경기가 악화되면서 유동성 위기에 빠지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지만 시중은행이 몸을 사리면서 결국 구조조정 부담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에 쏠리고 있다. 또 최근에는 회사채 등을 통한 자금 조달이 많아지면서 은행 이외에도 다양한 채권자들이 등장해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채권단 대신 PEF가 나서서 기업 지분을 사들여 가치를 높인 뒤 되파는 것이 더 효율적인 구조조정 방안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8년 금융위기로 파산 위기에 몰렸던 미국 제너럴모터스(GM)도 민간 부문이 주도한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다시 건실한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문제는 국내 자본시장의 PEF가 이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역량이나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우선 상당수의 국내 PEF는 보통 사업 3년 차에 접어들면 투자금 회수를 위한 작업에 나선다. 투자 기간이 짧아 긴 투자호흡을 필요로 하는 조선, 해운 등 장치산업에는 적합하지 않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국내 PEF가 인수 후 기업 가치를 높일 역량도 갖추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게다가 이런 민간 회사들은 구조조정을 위한 ‘실탄’도 부족하다. 지난해 채권단이 대우조선해양을 살리기 위해 투입하기로 한 금액은 4조2000억 원에 이른다. 구조조정을 위해 이 정도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국내 PEF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구조조정전문회사로 변신한 유암코도 같은 이유로 대기업 구조조정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금융권 관계자는 “솔직히 말해 현재로서는 국가 기간산업 구조조정에 나설 만한 곳이 국책은행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PEF 등 시장 플레이어들이 역량을 쌓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시급한 숙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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