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저장(浙江) 성 항저우(杭州)에 사는 대학생 유영 씨(24·여)는 한 달에 한 번 집에서 네일아트 서비스를 받는다. 스마트폰으로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 앱에 접속해 맘에 드는 미용실을 고른 뒤 120위안(약 2만1600원)을 지불하면 30분도 안 돼 네일아티스트가 현관문을 두드린다. 결제는 ‘알리페이’(알리바바의 결제 앱)로 ‘터치’ 한 번이면 끝난다. 그의 스마트폰에는 이 밖에도 기업 대 소비자 간 거래(B2C)용 온라인 쇼핑몰인 ‘티몰’, 소셜커머스인 ‘쥐화쏸(聚I算)’ 등 7개의 알리바바 앱이 깔려 있다. 유 씨는 “음식, 옷뿐 아니라 청소·세탁 서비스와 금반지까지 알리바바로 해결한다”며 “밖에 나가지 않아도 다양한 쇼핑이 가능해 집과 시장 구분 없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물류와 서비스의 융합이 ‘배송시간 제로’ 시대를 만들고 있다.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상품을 신속하게 배달하거나 상품 대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으로 원하는 기능을 즉석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엔 글로벌 전자상거래 회사들에 이어 유통회사와 택배회사들도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물류 혁신을 선보이면서 세계의 상권을 하나로 묶고 있다.
○ 중국 전역이 ‘1일 상권’으로
3월 말 중국 상하이(上海) ‘차이냐오 네트워크’(알리바바 물류부문 자회사)의 물류센터 집하장. 중국에서 가장 큰 택배회사 8곳의 트럭들이 분주히 드나들고 있었다. 이 트럭들은 모두 차이냐오의 물류정보 시스템에 등록된 차량들. 티몰, 타오바오 등에 주문이 접수되면 물류정보 시스템을 통해 택배사별 배송 역량과 지역별 주문량 등이 계산돼 자동으로 각 회사에 배달 물량이 할당된다. 배송 차량들은 24시간 안에 상하이, 항저우 등 주변 도시로 물건을 실어 나른다. 대부분의 유통회사들은 물류회사 한 곳과 독점 계약을 맺거나 한국의 ‘쿠팡’처럼 자체적으로 배송 인력을 두는데, 알리바바는 온라인상의 물류 플랫폼을 만들어 중국 내외 3000개의 물류회사를 참여시킨 거대한 물류망을 구축했다. 차이냐오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11일 ‘광군제(光棍節·알리바바의 대규모 연례 할인 행사)’ 하루에 평소보다 10배 이상 많은 4억6700만 개의 소포를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은 수년간 축적된 배송정보를 활용해 시기별 지역별 배송량을 정확히 예측하고 충분한 장비와 인력을 동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차이냐오는 현재 중국 12개 도시에서 ‘당일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당일배송 지역을 2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한국 국토 면적의 약 96배인 중국 전역에서 ‘24시간 이내 배송’, 해외 주문은 ‘72시간 이내 배송’을 하는 게 차이냐오의 목표다.
미국에서는 또 다른 ‘e커머스(전자상거래) 공룡’인 아마존이 물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이 회사는 물류로봇 개발회사인 ‘키바 시스템스(Kiva Systems)’를 7억7500만 달러에 인수하는 등 물류 인프라 부문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지금까지 5만여 대의 물류 로봇을 상품 선적 업무 등에 투입했다. 드론을 이용해 30분 이내에 상품을 배송하는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해 7월 세계 최대의 유통체인 월마트를 시가총액에서 추월하며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미국에서 가장 큰 유통기업이 됐다. ○ 사라지는 온·오프라인 쇼핑 경계
오프라인 유통회사들도 온라인 플랫폼을 강화하며 ‘e커머스 벤치마킹’에 나섰다. 중국 최대의 가전 유통체인인 ‘쑤닝(蘇寧)’은 지난해 알리바바와 전략적 제휴를 했다. 알리바바의 인터넷 쇼핑 플랫폼을 공유하고 대규모 할인 이벤트를 함께 열기 위해서다.
쑤닝은 특히 ‘O2O(온·오프라인 연계)’ 시장 개척에 적극적이다. 쑤닝의 각 지점 1층에는 ‘O2O 체험관’으로 불리는 전자상거래 전용 매장이 있다. 이곳에서 소비자들은 평소에 흔히 볼 수 없던 수입 화장품, 식료품 등을 직접 써보고 스마트폰으로 주문한다. 제품마다 붙어 있는 QR코드(스마트폰 전용 바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면 자동으로 주문과 결제가 이뤄진다. 절차가 간편해 전자상거래에 서툰 중·장년층까지 고객으로 끌어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성환 KOTRA 항저우무역관장은 “2000년대 말부터 온라인 진출을 강화한 쑤닝은 현재 중국의 3대 전자상거래 회사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유통회사들과 전자상거래 회사들의 진입으로 궁지에 몰린 택배회사들은 배송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속도전’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 택배회사 UPS가 2012년 개발한 오라이언(ORION)시스템은 UPS가 축적한 빅데이터를 분석해 가장 빠른 배달 경로를 찾아내 택배기사에게 알려준다. 이렇게 해서 택배기사들의 운행거리를 연간 1억 마일(약 1억6000km) 이상 단축했다. 잭 레비스 UPS 선임이사는 “과거 택배회사의 고객이었던 전자상거래 업체가 지금은 경쟁자이자 고객”이라며 “맞춤형 서비스 등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자상거래와 물류기술의 융합이 지역 간 격차를 크게 줄일 것으로 기대한다. 해외 직구처럼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신속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물류산업이 칸막이 진입 규제에 안주하다가는 안방시장마저 해외 업체에 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태형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이 글로벌 물류 전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전자상거래 회사, 오프라인 매장, 물류센터가 실시간으로 주문 및 재고 정보를 공유하는 선진적인 물류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