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눈]지금 해운-조선업만 걱정할 때가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3일 03시 00분


박성용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박성용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변화를 수수방관하면 다가올 미래는 비참해진다. 급물살을 타고 있는 해운·조선업 구조조정은 이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외환위기도 모르고 지나갔다던 ‘조선업의 도시’ 경남 거제시는 최근 불황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만 수만 명이 실직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업계에선 “구조조정을 조금만 일찍 했더라면 지금보다 상황이 나았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조선업의 불황 징후는 이미 5년 전부터 포착됐다. 당시 중국 조선업체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하지만 국내 조선업계는 다들 당장 일감이 넉넉하단 이유로 멀리 보지 않았다. 만약 당시 기술력을 갖춘 업체 위주로 구조조정을 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면 지금 같은 비참한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세계적 기업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열심히 미래를 준비 중이다.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인 페이스북은 지난달 모바일 개인방송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미 SNS계 1인자이지만 페이스북의 시선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향한다. 페이스북은 2000년대 중반 PC 기반이었던 개인방송의 중심이 모바일로 이동하는 흐름을 포착하고 선제적 행동에 나섰다.

페이스북 같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에 ‘변화에 대한 발 빠른 대처’란 숙명과도 같다. 구글이나 애플도 마찬가지다. 두 회사는 벌써 ‘차세대 신제품(Next Big Thing)’을 준비 중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자동차. 두 회사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자율주행차량과 전기차의 상용화가 2, 3년 내 가능할 것이라 예고하고 있다.

일각에선 아이폰에 의해 초토화됐던 휴대전화 제조업의 비극이 자동차 산업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07년 아이폰이 나오자 피처폰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세계를 호령했던 노키아, 블랙베리 등은 순식간에 ‘휴대전화의 왕좌’를 애플에 내줘야 했다. 이유는 딱 하나. 현실에 안주한 채 변화를 바라보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국내 ICT 업계엔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기업들이 있다. 인터넷 전문은행을 추진하는 카카오, CJ헬로비전 인수·합병에 나선 SK텔레콤 등이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이들의 발목은 정치권에 단단히 잡혔다. 카카오는 ‘대기업 집단 포함’과 ‘은행법’이란 암초에 걸렸다. SK텔레콤은 공정거래위원회에 붙잡힌 채 반년 넘게 제자리걸음 중이다. 정부와 국회는 국내 ICT 업계도 파국으로 치닫고 나서야 지금의 해운·조선업처럼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 접근을 할 생각인가.

카카오와 같은 인터넷 기반 사업자, SK텔레콤과 같은 이동통신사, CJ헬로비전과 같은 케이블TV 업체는 모두 중대한 변화에 직면한 기업들이다. 특히 케이블TV 업체는 지난해 말 가입자 수가 인터넷TV(IPTV)나 위성방송 가입자 수에 추월당하는 등 그야말로 절벽 끝까지 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의 자발적·선제적 구조 재편마저 지연시키는 정부의 저의는 대체 무엇인가.

정부와 국회는 즉각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일 자세를 갖추고 재빠른 행동에 나서야 한다. 산업계의 변화 의지와 그 방향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힘껏 도와야 한다. 변화에 안이하게 대응하다 훗날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를 생각인가. 기업과 근로자들이 비탄에 빠진 후에야 또다시 부랴부랴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할 생각인가. 지금 해운·조선업만 걱정할 때가 아니다.

박성용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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