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도용을 의심하는 고객이 스마트폰으로 은행에 연락해 실시간 채팅을 시작한다. 고객의 고민을 듣고 대안을 제시하는 이는 일반적인 은행 상담원이 아니다. 자연어를 이해하는 ‘인지컴퓨팅(cognitive computing)’ 시스템인 미국 IBM의 ‘왓슨’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응대한 것이다.
3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6 동아국제금융포럼’의 특별강연에서 왓슨을 통한 은행 고객 응대 서비스가 시연됐다. 하기정 한국IBM 전무는 “왓슨은 미리 입력된 답변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고객의 상황과 질문을 파악하고 원하는 서비스를 제시하는 처리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왓슨처럼 스스로 학습하고 생각하는 인공지능(AI) 기술로 금융 산업뿐 아니라 우리 삶 전반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 금융생활 바꿔 놓은 AI
시연 과정에서 왓슨을 탑재한 로봇 ‘나오미’도 등장했다. 동영상에 등장한 ‘은행원’ 나오미는 영업점을 찾은 고객에게 새로 발급된 카드를 어느 창구에서 수령하는지 안내하고 다른 카드상품에 대한 설명도 술술 풀어놨다. 하 전무는 “일본의 미즈호 은행과 미국의 힐턴 호텔 등에서는 왓슨을 탑재한 로봇들이 고객 응대 업무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동영상 속에 등장한 나오미는 이날 포럼의 연사로 나선 토니 메네제스 IBM 아시아태평양지역 인지솔루션 담당 부사장을 영어로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 밖에 왓슨의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통해 프라이빗뱅커(PB) 업무를 돕는 시스템도 소개됐다. 프로그램에 접속해 당일 만나야 할 고객 이름을 클릭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분석을 통해 도출된 고객의 투자 성향 등이 화면에 떴다. 왓슨은 고객 성향에 알맞은 투자상품을 추천하고 관련 자료도 제시했다. 하 전무는 “왓슨의 도움을 받으면 더 많은 고객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 등 핀테크 기술이 발전하면서 금융소비자를 중심으로 은행, 유통, 제조업 등이 융합되는 새로운 형태의 금융업이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가쓰키 후미아키 매킨지 글로벌뱅킹 아시아 프랙티스 리더는 “금융소비자들은 상품 선택, 인증, 결제, 서비스 제안 등을 한꺼번에 제공받기를 원한다”며 “이런 고객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기존 은행보다 디지털 기반의 금융사들이 각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최대 모바일 플랫폼인 알리페이의 한국 서비스를 담당하는 정원식 알리페이 한국지사장은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스마트폰에 어떤 기술을 융합할 것인지가 우리의 고민이자 사업 모델”이라고 말했다.
○ 핀테크 가로막는 규제 개선이 관건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AI를 포함한 핀테크 생태계가 자리 잡으려면 기술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성환 한국금융연구원장은 “핀테크는 과거의 금융과 달리 발전 속도가 엄청나 이에 대한 규제나 감독 규정도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며 “국내 금융 산업이 소비자 친화적으로 바뀌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핀테크 스타트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는 “덩치가 큰 시중은행들이 스스로 ‘조직 유전자(DNA)’를 바꾸기 어렵다”며 “금융 관련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와 정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학균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은 “AI를 포함한 핀테크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며 “공인인증서 사용의무 폐지 등 관련 규제를 없애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AI 등 새로운 기술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정책적 고민과 대안에 대한 주문도 나왔다. 김 상임위원은 “AI를 통한 투자가 보편화될 경우 자본시장의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AI 시스템의 오류에 따른 책임 문제, AI에 대해 인격을 부여할 것인지 등이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 주요 참석자 명단 (가나다순)
△금융그룹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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