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한 경유차 중에서도 학원통학차 등 생활공간 주변을 주로 운행하는 ‘생활형 차량’을 집중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1일 확인됐다. 고속도로 등을 주로 운행하는 화물운송 트럭 등 ‘산업형 차량’보다 시민들의 건강에 직접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판단에서다.
이날 환경당국 관계자는 “생활형 차량을 차별화해 관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환경부가 2005년 이전에 출시된 2.5t 이상 경유차 10만 대에 ‘미세먼지-질소산화물 동시 저감장치’를 부착하기 위해 배정한 예산 1조5000억 원을 생활형 차량에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노후한 생활형 차량에 조기 폐차 비용 지원을 확대해 퇴출을 유도하는 방법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어린이집과 학원 주변에서 공회전을 많이 하는 통학차, 마을버스, 주택 밀집 지역을 운행하는 이삿짐 차량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질소산화물이 주거지역의 미세먼지 농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날 오후 동아일보 취재팀이 통학차가 몰려 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삼성로) 학원가에서 직접 측정해 보니 미세먼지(PM10) 농도가 m³당 최대 197μg(81μg 이상부터 미세먼지 나쁨)으로 같은 시간 한국환경공단 ‘에어코리아’가 발표한 강남구 평균 농도(41μg)의 5배에 가까웠다.
▼ 통학차 몰려있는 대치동 학원가 미세먼지 농도, 지역평균의 5배 ▼
김정수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장은 “배기량이 같더라도 산업형 차량보다는 생활형 차량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편이 예산 대비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 매캐한 매연 속 학생들
‘들들들.’
1일 오후 6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P어학원 앞 왕복 8차로 도로는 시동을 건 채 학생들을 내려주는 미니버스 10여 대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중고교생들이 매캐한 매연을 뚫고 통학차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날 취재팀이 인도 위에서 미세먼지(PM10) 농도를 재보니 낮게는 m³당 50μg부터 높게는 197μg까지 나타났다.
한 어학원에서 12년 된 통학차를 모는 김모 씨(46)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학생들을 태우고 내리려면 공회전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유 버스와 화물차가 내뿜는 질소산화물은 공기 중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미세먼지를 만드는 주범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통계’에 따르면 2012년 서울 강남구에 도로이동오염원이 배출한 질소산화물 1798t 중 504t(28%)은 경유 버스와 화물차가 내뿜은 것이었다. 수도권대기환경청은 질소산화물 배출 총량이 2019년까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도로와 가까운 곳에 거주할수록 흡입하는 미세먼지의 양은 많아진다. 임영욱 연세대 의대 환경공해연구소 교수팀이 2014년 서울 강남구 르네상스호텔 사거리 인근에서 미세먼지를 측정한 결과 테헤란로에서 100m 떨어진 지점의 평균 미세먼지(PM10) 농도는 m³당 79μg이었지만 도로와 가까운 지점의 농도는 127μg으로 60.8%나 높았다. 같은 도로 위에서도 버스중앙차로의 미세먼지 농도는 갓길보다 최대 41% 높았다.
생활형 차량에 대한 집중 관리는 ‘공해차량 운행제한지역(LEZ)’ 확대에 대비한 것이기도 하다. 학계에서는 영국 런던 등에서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한 LEZ를 서울에도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지만 “생계형 영세 사업자의 부담을 늘린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동시 저감장치는 아직 의무 사항이 아닌 데다 유지 부담도 만만치 않아 생활형 차량 운전자들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게 과제다. 환경부는 지난해 경유차 1만 대에 동시 저감장치를 부착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실적은 60대에 그쳤다. 동시 저감장치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 주기적으로 충전해야 하는 요소수(암모니아 수용액) 비용만 연간 44만 원가량이 들기 때문이다. 요소수 충전비를 보조받을 수 있는 것은 저감장치를 처음 부착한 뒤 3년 동안만이다. 장치를 부착할 때 들어가는 자기부담금도 30만 원 정도다.
생활형 차량과 산업형 차량을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환경부 관계자는 “오염물질 저감 효율이 높은 차량에 우선적으로 비용을 지원하는 게 타당하지만 각 차량이 주로 어느 지역을 운행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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