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규모가 3월 말 기준 31조 원으로 15년 만에 최대치라고 금융감독원이 어제 밝혔다. 조선·해운업에서 빚을 못 갚는 좀비 기업이 많아지면서 1분기에 새로 발생한 부실채권 7조5000억 원 중 기업 관련 채권이 6조8000억 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의 쓰나미가 금융권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회수가 힘든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이 1.87%로 중국은행(1.75%)보다 높아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은행들은 기업의 미래 채무상환능력을 자체 평가해 여신 등급을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의 5단계로 나눈다. 고정 이하는 빚을 떼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부실채권이 급증했다는 것은 기업들이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했고, 은행의 수익성도 나빠진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금감원에서 밝힌 부실채권 31조 원이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다.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조선사들 여신을 정상으로 분류해 충당금을 거의 쌓지 않았다. ‘부실 공룡’인 대우조선해양 관련 여신도 국민과 신한은행을 뺀 대부분의 은행은 모두 정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대우조선 여신 18조6000억 원을 갚을 수 있다는 평가에 선뜻 동의할 사람은 없다.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조차 “대우조선의 여신등급을 정상 밑으로 떨어뜨리면 기업에 부정적”이라며 손을 놓은 상태다. 숨어 있는 ‘그림자 부실’의 규모를 짐작조차 할 수 없으니 폭발력 미상의 뇌관을 안고 있는 것처럼 불안하다.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는 부실채권을 처리하지 않고 증권으로 만들어 돌리다가 뇌관이 터진 사건이었다. 최근 중국에선 은행권 부실채권이 중국 경제의 경착륙이나 금융위기를 촉발하는 ‘민스키 모멘트’가 5년 안에 도래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왔다. 중국보다 부실채권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 은행들이 부실 가능성 높은 여신에 대비해 충당금을 쌓지 않는 것은 완충장치 없는 자동차가 콘크리트 벽에 부딪히도록 내버려두는 격이다. 한국은행과 금감원은 은행 건전성 검사에 착수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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