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다 갚은 웅진그룹 회장 윤석금… 화장품 방판으로 ‘재기 도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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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그룹, 채무 1조4384억 조기상환

“20대 후반에 백과사전 팔러 다닐 때엔 쫓겨나기 일쑤였어요. ‘먹고살 돈도 없는데 무슨 백과사전이냐’는 소릴 들으며 나와야 했죠. 무거운 책 들고 거리를 걷는데 어찌나 땀이 나던지 속옷까지 흠뻑 젖었습니다. 슬펐느냐고요? ‘땀이 많이 나서 몸 안의 노폐물이 다 빠져나가겠구나, 돈 들여 사우나 갈 필요는 없겠구나’ 생각하며 웃었죠. 영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런 긍정적인 자세입니다.”

7일 웅진그룹에 따르면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71)은 올해 새로 내놓은 화장품 브랜드 ‘릴리에뜨’의 지난달 사업설명회에 직접 강사로 나섰다. 이 자리에서 그는 26세 때 판매사원 일을 시작해 1년 만에 영업 실적 1위에 오른 노하우를 설명했다.

2011년 웅진그룹을 재계 순위 31위의 대기업으로 끌어올리던 때만 해도 윤 회장은 ‘세일즈맨의 신화’로 불렸다. 하지만 건설사 인수 등 무리한 사업 확장에 발목이 잡히면서 지주사 웅진홀딩스(현 ㈜웅진)는 2012년 10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렇게 몰락한 신화로 끝난 줄 알았던 윤 회장이 최근 화장품 등 신사업을 펼치며 활발한 재기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법정관리 당시 발생한 채무도 최근 모두 청산했다. 웅진그룹은 법정관리로 인한 채무 1조4384억 원의 80%가량을 코웨이, 웅진식품 등 주력 계열사를 팔아 갚고 2014년 2월에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또 2022년까지 갚아야 했던 1470억 원의 빚 중 채권자가 조기 변제를 거부한 일부를 뺀 1214억 원을 이달 들어 갚았다. 상환 기한을 6년 앞두고 사실상 모든 빚을 정리하면서 그룹 재건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윤 회장이 그룹 재건의 핵심 동력으로 선택한 것은 가장 자신 있는 ‘방문판매업’이다. 윤 회장은 1980년에 책 방문판매 사업을 하는 웅진출판(현 웅진씽크빅)으로 시작해 웅진그룹을 키웠다 1990년대 말 국내 화장품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했던 코리아나화장품의 전신 ‘사랑스화장품’을 1988년 세우며 방문판매 화장품 시장도 개척했다.

올해 1월 그가 론칭한 화장품 브랜드 릴리에뜨는 ‘온라인 방문판매’라는 새로운 콘셉트를 내세우고 있다. 기존 방문판매 방식에 온라인 쇼핑과 네트워크 마케팅을 결합한 형태로 윤 회장이 직접 설계한 사업 형태다. 판매원이 고객을 직접 접촉하지만 구매는 온라인에서 이뤄지며, 고객 관리는 온·오프라인 양쪽에서 진행된다. 지난달 첫 상품인 ‘리쥬메디’를 내놓은 릴리에뜨는 회원에 가입하면 5만 원의 사이버머니를 지급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정수기 렌털사업인 코웨이를 통해 역량을 축적한 렌털 사업에도 진출했다. 지난해 11월 ㈜웅진은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기업에 빌려 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기업이 ERP 시스템을 구입할 경우 평균 5개월 걸리는 구축 기간이 한 달반으로 단축되며 연간 비용도 30% 싸다는 게 웅진 측의 설명이다.

윤 회장이 노하우가 풍부한 방문판매업과 렌털 사업을 기반으로 부활을 도모하는 데 대해 재계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비전문 영역이던 건설업에 진출하고, 투자 유치를 위해 저축은행을 사들이는 등 무리한 확장을 시도한 것이 웅진그룹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룹의 부실이 발생한 이후 윤 회장이 보여 온 자세에 대해서도 재계의 평가가 대체로 좋은 편이다. 윤 회장 일가는 법정관리 이전에 이미 3000억 원의 사재를 투입해 관련 업체, 직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에도 웅진코웨이(현 코웨이), 웅진식품 등 우량 계열사를 우선 매각해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다. 이들 기업들은 현재 건실하게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 웅진그룹의 임원이던 재계 인사는 “윤 회장은 ‘내 돈이 소중한 만큼 남의 돈도 소중하다’는 인식이 강한 사람”이라며 “산업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는 대기업들도 그의 자세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웅진그룹#방문 판매#윤석금#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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