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국내 72개 건설사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은 서울 강남구 언주로 건설회관에 모여 이렇게 약속했다. ‘공정경쟁과 자정실천 결의대회’란 준엄한 내용의 현수막도 행사장 중앙에 걸려 있었다. 한국의 대표 건설사 수장들이 모여 한목소리로 대국민 약속을 발표한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2000억 원 규모의 사회공헌기금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은 큰 화제가 됐다. 지난해 종합건설사 1곳의 평균 국내 수주액 140억8000만 원의 10배가 훌쩍 넘는 규모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금을 운영할 ‘건설산업 사회공헌재단’을 지난해 12월 출범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지난해 말까지 조성을 완료하기로 했던 기금은 아직도 ‘모금 중’인 상태다. 구체적인 사업을 결정하고 집행할 이사회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당초 건설업계가 재단 설립을 약속할 때부터 이런 파행은 예상됐다. 업계의 자발적인 의지와 참여가 아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시작된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토교통부는 광복절을 앞두고 입찰 담합 등으로 수천억 원의 과징금을 물어야 하거나 공공기관 공사 입찰 참가 제한 조치를 받은 건설사 2200곳에 대한 행정 제재를 풀어줬다. 대신 업계에는 ‘적절한 성의 표시’를 요구했다고 한다. 국내 굴지의 한 건설업체 CEO는 “건설경기 침체로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던 때여서 이 같은 정부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그리고 건설사들이 고심 끝에 내린 성의 표시가 사회공헌재단이었다. 당시에도 ‘기금 2000억 원은 적자를 내는 등 경영난을 겪고 있는 건설사들의 상황을 고려할 때 무리한 규모’라는 반발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정도 성의는 보여야 여론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다”는 주장에 덮이고 말았다.
저유가로 인한 해외 건설 시장의 침체 등으로 건설업계의 올해 상황은 여전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8월의 약속을 말 그대로 이행하기도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건설사들은 이제라도 능력에 맞게 할 수 있는 사회공헌사업 규모와 방법을 정직하게 밝히고 실천에 매진해야 한다. 특별사면이라는 특혜를 준 정부도 기업들이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제대로 감독하길 바란다. 지금처럼 수수방관하고 있다면 ‘공정경쟁과 자정실천 결의’는 정부와 기업이 공동 기획한 ‘대국민 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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