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변질된 보금자리주택]‘강남에도 공공주택’ 내세웠지만
처음부터 반값 아파트 특혜 논란
외제차 즐비… 차익 챙기고 떠나 장기임대 주민들 상대적 박탈감
뉴스테이 등 현 사업 교훈 삼아야
국토부 “지금 잣대로 판단 부적절”
서울 강남구 자곡로 LH강남힐스테이트 아파트에 장기임대로 입주한 김모 씨(35·여)는 바로 길 건너 LH푸르지오 아파트를 지날 때마다 허탈한 기분이 든다. 지난해 보금자리주택 전매 제한이 풀리면서 매매가격이 분양가보다 수억 원이 올랐기 때문이다. 김 씨는 “결과적으로 그 사람들은 한순간에 중산층이 된 것 아니냐”며 “왜 그때 분양 대신 임대를 신청했는지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원래 분양을 받은 사람들이 집을 팔고 떠나면서 주민 구성이 바뀌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서초보금자리지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B 씨는 “외제차가 즐비한 지하주차장을 보면 이미 주민이 ‘물갈이’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무주택 서민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준다는 취지로 도입됐던 보금자리주택이 오히려 서민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 때문에 공공재의 혜택이 소수에게만 돌아가지 않도록 주택정책을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희망에서 절망으로 바뀐 보금자리주택
보금자리주택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9·19 부동산 대책’을 통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내 집 마련에 대한 열망이 큰 무주택 서민을 위해 임대주택뿐만 아니라 저렴한 공공분양주택도 공급한다는 취지였다. 접근성이 좋은 곳에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함께 지어 ‘소셜믹스’를 달성하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대규모 주택을 지을 땅이 부족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 주변 시세보다 30∼50% 저렴한 주택을 장기적으로 공급하려는 것이었다.
2009년 6월 서울 강남 세곡, 서울 서초 우면, 경기 고양 원흥, 경기 하남 미사지구 등 4곳을 시범지구로 지정했다. 같은 지역에 있는 일반 아파트보다 훨씬 저렴한 분양가로 공급되는 이른바 ‘반값 아파트’라는 점이 부각돼 무주택자의 관심을 받았다. 2014년 내곡지구에서 더샵포레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한 직장인 김홍수 씨(38)는 “당시에는 내 집 마련이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강남권에 이렇게 좋은 아파트를 얻게 돼 너무 기뻤다”고 분양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분양가를 크게 낮춰 주변 집값을 끌어내리겠다는 정책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채 최초 당첨자에게만 ‘로또’에 가까운 시세차익을 안겨줄 것이라는 우려가 도입 초기부터 제기됐다. 2012년 입주해 지난해 12월 이미 전매 제한이 풀린 서초지구 서초힐스 인근 A부동산 대표는 “시세가 분양가의 2배 이상으로 올랐다”며 “이미 서민 아파트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시세 차익 환수 등에 대해 뾰족한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당시 정책을 실행했던 전 국토교통부 고위 관계자는 “오랫동안 내 집 마련을 기다린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혜택을 주는 것은 가능하다고 봤다”며 “집값이 크게 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최근 강남권 집값이 오르면서 예상보다 시세 차익이 커졌다”고 말했다.
보금자리주택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2018년까지 150만 채를 공급한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정부가 저렴한 값에 분양 아파트를 공급하면서 민간 건설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반발이 나왔다. 값싼 보금자리주택을 기다리는 수요 때문에 기존 주택 거래가 위축되고 전세금만 치솟는다는 불만도 커졌다.
초기 흥행에 성공했던 강남권과 달리 일부 수도권 보금자리주택은 많은 물량의 미분양이 발생하기도 했다. 전매제한 기간과 거주의무 기간이 길고 예상보다 가격이 저렴하지 않아 실수요자들이 청약을 망설였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사업 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채 문제까지 겹쳐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강남 등 일부의 사례를 들어 보금자리주택 정책이 전체적으로 실패했다고 재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당초 계획대로 공급이 됐다면 주변 시세를 낮추고 주택 가격을 안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 뉴스테이, 보금자리 전철 밟지 말아야
비판이 계속되면서 박근혜 정부는 분양주택 중심의 보금자리주택 대신 임대주택 확충에 초점을 맞췄다. 2014년 관련법에서 보금자리주택이란 명칭이 공공주택으로 대체되면서 보금자리주택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대신 박근혜 정부는 젊은층과 중산층을 위한 맞춤형 임대주택인 ‘행복주택’과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를 핵심 주거복지 대책으로 내놨다.
행복주택은 도입 초기 인근 주민의 반대, 뉴스테이는 ‘고가 월세’ 논란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최근에는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정부는 내년까지 전국에서 30만 채의 행복주택·뉴스테이를 공급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린벨트를 해제해 추진하는 현 정부의 임대주택 정책도 보금자리주택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남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변호사)은 “보금자리주택은 그린벨트 개발 이익으로 국민 개개인의 ‘내 집 마련’ 욕망에 불을 붙이고 정권의 인기를 끌어올린 사업”이라며 “민간 건설사가 주도하고 있는 ‘뉴스테이’ 사업도 8년 의무 거주 기간이 끝나고 분양이 이뤄질 때 과도한 개발 이익을 가져가는 이가 없는지 등을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지분 투자 등을 통해 개발이익을 공공에서 흡수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벌일 공공주택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보금자리주택의 실패 원인을 꼼꼼히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보금자리주택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몇만 채 건설’ 같은 치적을 내세우는 밀어붙이기식 사업 대신 지방자치단체가 수요와 공급을 적절히 파악한 뒤 소규모로 진행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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