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실무 두토끼 잡고 정규직으로… 청년-中企 ‘윈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8일 03시 00분


[청년이 희망이다/일자리, 강소기업이 답이다]<2> 일-학습 병행 프로그램 현장

“찬란했던 ‘대우’의 위상을 되찾고 싶어요.”

전북 정읍시의 대우전자부품 콘덴서영업팀 전지열 씨(28·전북대 기계공학과 졸업)의 목표다. 그는 2014년 6월부터 이곳에서 학습근로자로 일하다가 지난해 12월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전 씨는 취업준비생 시절 다른 기업의 정규직으로도 합격했지만 주저 없이 대우전자부품의 학습근로자를 선택했다. 아무 경험 없이 바로 일하기보다는 좀 더 체계적으로 기술을 배우고 경험을 쌓은 뒤 현장으로 가고 싶었다. 전 씨는 “학습근로자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현장 분위기와 시스템을 빨리 이해하고 적응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독일, 스위스식 도제 시스템 접목

일·학습 병행 학습근로자로 일하다 정규직으로 채용된 나혜진, 강철하, 전지열 씨(왼쪽부터)가 5월 26일 전북 정읍시 공단2길 
대우전자부품 연구실에서 자신의 손을 거쳐 생산된 제품을 들고 취업 성공을 자축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정읍=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일·학습 병행 학습근로자로 일하다 정규직으로 채용된 나혜진, 강철하, 전지열 씨(왼쪽부터)가 5월 26일 전북 정읍시 공단2길 대우전자부품 연구실에서 자신의 손을 거쳐 생산된 제품을 들고 취업 성공을 자축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정읍=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전 씨가 이렇게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시행한 일·학습 병행제 덕분이다. 일·학습 병행제는 정부가 독일, 스위스식 직업교육 제도를 국내 실정에 맞게 설계해 2014년부터 시행 중인 인력 양성 제도다. 인턴 또는 학습근로자 신분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회사 선배들로부터 각종 훈련을 받는 일종의 도제 교육 시스템이다. 학교가 주도했던 기술인력 양성을 산업계가 주도할 수 있도록 지원해 보겠다는 것이 이 정책의 의도다.

대우전자부품은 1973년 대우그룹 계열사로 설립돼 한때 연 매출액이 3000억 원에 이를 정도로 탄탄한 기업이었다. 그러나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2008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하자 직원들도 대거 회사를 떠났다. 다행히 2010년 아진산업이 인수한 뒤 현대자동차에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전기자동차 부품도 개발하는 등 연구개발(R&D)에도 적극 나섰다. 이미지 쇄신을 위해 한때 사명을 바꾸는 것도 검토했지만, 동남아에서 여전히 인지도가 높은 대우 브랜드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 포스코대우(옛 대우인터내셔널)에 로열티까지 지급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13년 9월 ‘취업하고 싶은 500대 강소기업’에 선정됐고, 2014년에는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2014년 8월에는 일·학습 병행 기업으로 선정됐다. 일·학습 병행제를 이용해 모자란 일손도 보충하고 능력 있는 인재를 확보해 보자는 전략이었다. 먼저 총 850시간에 이르는 훈련 시스템을 탄탄히 구축하고, 학습근로자를 적극 채용했다. 정상 근무를 하면서 공부도 하고, 자격증을 따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1, 2기 합쳐 총 14명이 수료했고, 회사는 이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신입사원 초봉도 약 3700만 원(성과급 제외)으로 대폭 인상했다. 일을 하면서 훈련을 받고, 높은 연봉까지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나자 청년들의 호응도 높아졌다. 최근 인턴사원 10명을 뽑기 위해 공고를 내자 500명이나 지원했다.

개발팀에서 근무 중인 강철하 씨(29·전주대 전기전자공학과 졸업)는 대기업을 포기하고 이 회사에 와서 학습근로자를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된 경우다. 강 씨는 “영어와 경력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전공”이라며 “학습근로자를 통해 실무와 이론을 겸비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강 씨처럼 훈련을 수료한 뒤 관리부에 재직 중인 나혜진 씨(26·여·부산가톨릭대 산업보건학과 졸업)는 “직전에 다닌 회사에서는 시키는 일만 했었는데 여기서는 스스로 찾아서 일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석호 관리부장은 “일·학습 병행을 통해 입사한 사원들의 성과와 적응력은 정말 뛰어나다”며 “회사가 다시 성장하려면 능력 있는 인재를 조기에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앞으로 신입사원은 모두 일·학습 병행을 통해 뽑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 청년, 중소기업 모두에 ‘윈윈’

최근 일·학습 병행제에 대한 중소기업의 호응은 폭발적이다. 일·학습 병행제를 통해 ‘현장형 인재’를 조기에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 역시 또래보다 빨리 취업해서 자격증이나 학위까지 취득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정부도 이 제도를 도입한 기업에 직업훈련비 등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당초 정부가 올해 목표한 참가 기업은 4000곳이었지만 7235곳이나 신청하는 바람에 계획보다 늘려 5643곳을 선정했다. 이는 2014년(2079곳)보다 171%나 급증한 것이다. 이미 훈련프로그램 개발을 끝낸 2364개 기업은 1만489명을 채용해 훈련을 실시 중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부터 △산학 일체형 도제학교 △고등학교·전문대 통합교육과정 △장기 현장실습형 등으로 일·학습 병행제를 확대했다. 재학생 단계에서부터 학습근로자로 직업훈련을 받은 다음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훈련 품질을 강화하기 위해 전담근로감독관 211명을 지정했고, 기업 내부의 현장교사를 육성하기 위한 지원책도 마련할 예정이다. 권기섭 고용부 직업능력정책국장은 “산학 일체형 도제학교 학과의 입학 경쟁률이 세지는 등 학생, 학부모의 만족도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읍=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청년#취업#강소기업#일자리#정규직#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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