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별관회의에서 청와대와 금융위원회가 대우조선 지원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언론 인터뷰)
“(홍 전 회장의) 개인적인 주장이다. 특별히 언급할 가치가 없다.”(청와대·금융위원회)
정부가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나랏돈 12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청와대와 정부, 국책은행 등 현 정부의 ‘구조조정 라인’에 대한 비판도 확산되고 있다. 민간 기업의 부실을 메우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는 마당에 정작 관료 사회나 공공 부문에서는 이 사태를 책임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국책은행에 ‘낙하산’을 투하했던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자회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국책은행도 정작 그동안 구조조정을 지연시킨 책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오히려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이며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 공적자금 투입에도 책임지지 않는 정부
기업 구조조정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부실이 눈덩이처럼 커진 데는 기업 구조조정의 실권을 가진 청와대와 경제부처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지적이 많다. 형식적으로는 국책은행을 위시한 채권단이 구조조정의 실무를 맡고 있지만 주요 기업의 생사여탈은 사실상 정권 최고위층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구조조정의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할 국책은행장에 대한 인사부터 줄줄이 ‘낙하산’으로 도배했다. 홍기택 전 산은 회장은 대통령직 인수위원 출신으로 산업 구조조정에는 전혀 전문성이 없는 인사로 평가받았다. 금융계에서는 홍 전 회장이 지난 3년의 임기 동안 자회사 감독 등 구조조정의 ‘야전 사령관’으로서 역할에 사실상 손놓고 있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조선·해운업이 멍들어가던 2011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 수출입은행장을 지낸 김용환 현 NH농협금융 회장, 또 금융권의 대표적인 친박(친박근혜) 인사로 그 뒤를 이은 이덕훈 현 행장 역시 구조조정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을 듣는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국책은행에 대한 비판이 높지만 결국 이들에 대한 인사권을 갖고 있었던 것은 결국 정부와 청와대”라며 “구조조정의 ‘칼’을 휘둘러야 할 자리에 낙하산을 내려보내면서 효과적인 구조조정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고 경영을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들도 부실의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2000∼2015년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 30명 중 관료, 산업은행, 정치권 출신은 총 18명이었다.
정부가 국책은행에 책임을 떠넘긴 채 ‘꼬리 자르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날도 정부는 “구조조정에서 산은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는 홍 전 회장의 주장에 대해 “산은과 협의를 거쳤다”고 각을 세우며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국책은행 인사, 구조조정 시기 및 규모 결정 등 모든 것이 정부의 책임”이라며 “정작 정부가 본인들의 책임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고 꼬집었다.
○ 국책은행 자구안도 ‘면피용’ 지적
국책은행이 이날 발표한 자구안도 ‘소나기 피해가는 식’의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은행은 성과연봉제를 확대 도입하고 전 직원이 올해 임금상승분을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또 현재 3193명인 전체 직원 수의 10%를 2021년까지 단계적으로 감축할 예정이다. 수출입은행도 올해 임금상승분을 반납하고 2021년까지 정원의 5%를 줄이기로 했다. 부행장급 임원 등 인력과 조직을 일부 축소하는 방안도 내놨다.
하지만 이번 쇄신안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전면 쇄신하겠다”는 정부의 설명과 달리 부실기업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묻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성과연봉제는 모든 공공기관이 도입하는 방안이고 임금인상분 반납도 올해만 적용되는 일회성 대책에 불과하다.
이번 대책이 직원들의 희생을 강요했을 뿐 정작 구조조정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한 개선책은 빠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석헌 전 숭실대 교수는 “쇄신안은 과거의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인데, 이번 방안은 그런 해결책이 없이 직원들만 옥죄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국책은행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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