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減資)와 출자전환으로 부채비율을 낮춘 현대상선이 정부의 ‘선박 신조(新造) 지원 프로그램(선박펀드)’을 활용해 대형 컨테이너선을 발주하는 방안을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대형선박을 확보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것인데, 국내 조선소에 발주가 이뤄져 해운업과 조선업이 서로 ‘윈윈’하는 사례가 될지 주목된다.
20일 노르웨이의 해운전문 매체 ‘트레이드윈즈’ 등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최근 국내 조선소와 접촉해 1만4000∼1만50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을 발주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현대상선 측은 “실무자들끼리의 의견교환일 뿐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반응이지만 검토 중인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비록 논의 초기 단계지만 몇 년간 높은 부채비율 때문에 선박 발주는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상황이 많이 바뀐 것이다.
덴마크 머스크 등 해외 업체들이 1만8000TEU급 초대형 선박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동안 국적선사들이 운항하는 선박은 최대 1만3000TEU급에 머물러 있어 경쟁력에서 밀린다는 지적이 있었다. 만약 1만4000TEU급 이상 컨테이너선 발주가 이뤄진다면 현대상선이 선박펀드에 비교적 낮은 용선료를 내고 대형 컨테이너선을 운용할 수 있어 경쟁력을 갖추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상선이 새 선박을 발주할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은 부채비율을 400% 이하로 낮춰 정부의 선박펀드를 이용할 조건을 갖추게 됐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말 기준 부채비율이 2006%에 이르렀지만 이미 이뤄진 7 대 1 감자와 8월까지 완료될 것으로 보이는 채권단, 사채권자, 해외용선주의 출자전환이 이뤄지면 부채비율이 200%대로 낮아진다. 향후 유상증자와 지분 매각까지 이뤄질 경우 부채비율이 130%대까지 낮아질 수도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민관 합동으로 12억 달러(약 1조4000억 원) 규모의 선박펀드를 만들어 선박 건조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당시에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모두 부채비율 400%를 맞추는 것이 불가능해 보여 ‘사실상 지원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현대상선의 초대형 선박 발주는 해운동맹 가입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상선이 해운동맹 ‘THE 얼라이언스’의 결성 멤버에서 제외된 데에는 ‘덩치’가 작다는 것이 큰 원인이었지만 대형 선박을 확보하면서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극심한 수주 가뭄에 시달리는 국내 조선업계가 일감을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선박펀드를 조성한 의도 자체가 국내 해운사와 조선소가 상생하는 구조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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