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제2차 중소기업 금융지원위원회가 21일 서울 로얄호텔에서 열렸다. 주영섭 중소기업청장(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등 참석자들이 ‘중소·중견기업 금융 지원 활성화 선언문’에 서명한 뒤 기념 촬영을 했다. 중소기업청 제공
“조선 관련 업종이라고 하면 바로 손사래부터 칩니다.”
선박에 정수 등 수(水)처리 설비를 공급하는 중소기업 A사 대표 B 씨는 대출 상환 기간 연장을 요청하러 4월 은행에 갔다가 단번에 퇴짜를 맞았다. B 대표는 “지난해 매출이 줄긴 했지만 평소 같으면 상환 기간 연장은 물론이고 신규 대출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며 “은행 직원이 대놓고 조선 관련 업종이란 이유를 들며 거절하고, 10억 원을 당장 한 달 뒤에 갚으라고 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A사는 결국 자산을 매각하고 사무실 직원을 감원해 10억 원을 가까스로 마련해 갚았다. B 대표는 “조선업 위기를 미리 파악해 최근 몇 년 사이 조선업체와 거래를 줄이고 건축물에 수처리 시설을 설치하는 사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었다”며 “은행이 조선업체와 관련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주홍글씨를 새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남에 있는 한 조선기자재 부품업체 C사는 1%였던 신용보증기금 보증료율이 최근 1.5%로 올랐다. 이 회사 대표 D 씨는 “15년간 단 한 번도 대출금 상환이 늦은 적이 없었는데 지난해 매출이 떨어졌다고 보증료율을 바로 올리니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자금 사정이 어려워져 자재 구입이 보름에서 한 달가량 늦어지고 있다”며 “금융권이 중소기업의 여건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관련 중소기업들의 자금줄이 막히고 있다. 철강업종 관련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로 유탄을 맞고 있다. 금융권이 이들 업종을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분류하면서 신용도나 성장 가능성과 상관없이 신규 대출이나 기존 대출 상환 기간 연장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홍재근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은 자금이 경색되면 곧바로 도산 위험에 빠지기 쉽다”며 “은행에서는 종합적으로 판단한다고 하지만 대출 심사 담당자 입장에서는 구조조정 포함 업종 기업에 추가 대출이나 상환 기간 연장을 해주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홍 연구위원은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이들 기업의 매출 하락이 외부 요인으로 인한 일시적인 어려움이라는 ‘사인’을 적극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4월 실시한 조사에서 실제 구조조정을 경험한 중소기업의 48.6%가 ‘기술력·성장성보다는 단순 재무정보에 근거해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며 금융권에 불만을 드러냈다.
자금 사정 악화로 중소기업 경기전망지수도 4개월 만에 하락했다. 중기중앙회가 중소기업 3150곳을 대상으로 지난달 실시한 6월 경기전망에서 업황전망건강도지수(SBHI)는 전달보다 3.4포인트 떨어진 90.1로 집계됐다. SBHI는 경기를 전망한 업체의 응답 내용을 수치화한 것으로 100보다 낮으면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전망하는 업체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에 중소기업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21일 중소기업청과 11개 금융기관은 ‘제2차 중소기업 금융지원위원회’를 열고 ‘중소·중견기업 금융 지원 활성화 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들 기관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피해를 줄이고 옥석을 가리기 위해 자금과 인력, 마케팅 등의 정책수단을 연계한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금융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금융기관들은 “재무제표를 기반으로 한 기업 평가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기술력 등 미래 잠재력까지 고려한 평가 기법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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