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업체 “뭘 안다고…” 문전박대… 개발뒤엔 3년 특허소송 휘말려
“젊은이들 지방 연구소 기피 씁쓸… 어려움 이기고 제2의 신화 써야”
동아일보 6월 21일자 B3면에 나간 ‘연구개발(R&D) 현장을 가다’ 시리즈 기사 취재를 위해 17일 대전 유성구 엑스포로 SK이노베이션 B&I연구소에서 이장원 소장(상무) 등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코끝이 시큰해졌습니다. 분량상 지면에 모두 싣진 못했지만 배터리 핵심소재인 습식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LiBS)’ 생산 규모 세계 2위라는 화려한 성공 뒤에는 쓰디쓴 실패와 좌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구진은 ‘LiBS를 개발해 애국하자’며 의기투합했지만 상업생산 직후 제품이 팔리지 않아 1년간 공장 가동을 중지해야 했습니다. 당시 사업 담당자는 업무평가에서 최하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일본 경쟁사가 제기한 특허 소송에도 휘말렸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개발 및 생산 기간을 대폭 단축했지만 기술을 빼가서 그런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은 겁니다. 연구진은 기술을 잘 모르는 판사에게 진땀을 흘려가며 설명한 끝에 3년 만에 승소했습니다. 하지만 “태어나서 다시는 해보고 싶지 않은 게 소송”이라고 회고합니다.
새로운 공정을 개발한 뒤 기계 제작을 의뢰하기 위해 일본에 갔을 땐 현지 기술자가 이 소장을 화장실까지 쫓아와 만류했다고 합니다. “SK가 너무 모른다. 당신들 기술이 정말 좋다면 일본 회사들이 왜 안 했겠느냐. 너무 쉽게 보는 것 같은데 옛날 방식대로 가라.”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일쑤였습니다. 이 소장은 일본의 한 유명 배터리업체에 제품을 소개하기 위해 발표 자료를 준비하고, 납품을 기대하며 건물 앞에서 자랑스럽게 사진도 찍고 들어갔습니다. 정작 업체 측 파트너는 30분쯤 늦게 등장해 발표는 듣지도 않고, “당신들이 분리막의 강도라는 게 뭔지 아느냐”는 등 질문만 몇 개 던진 뒤 휭하니 자리를 떴습니다.
연구진은 수많은 땀과 눈물 끝에 LiBS뿐 아니라 새로운 공정 개발 및 안착에도 성공했습니다. 국내외 유수 배터리업체들을 고객사로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LiBS 개발 초기에 연구진은 5명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개발자 20명을 포함해 LiBS 관련 인력은 400명에 이릅니다.
연구소에서 안타까운 얘기를 또 하나 들었습니다. 최근 많은 젊은이들이 지방(대전)이라는 이유로 연구소에 취직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입사 후에도 수도권으로 옮기길 원한다는 겁니다. 더 많은 인재들이 편하고 익숙한 환경을 찾기보다는 SK이노베이션 연구진처럼 어려움을 무릅쓰고 낯선 환경에 발을 내디뎠으면 합니다. 그래야 제2, 제3의 ‘LiBS 신화’가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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