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최운열의 리디노미네이션 제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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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2002년 7월 리디노미네이션(화폐 액면단위 변경)을 극비리에 추진했다. 1년간 연구 끝에 1000원을 1환으로 바꾸는 계획을 마련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파장을 우려해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전 총재는 지금도 “화폐단위 변경은 늦을수록 손해”라는 생각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작년 9월 국정감사 답변에서 “리디노미네이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했다가 파문이 일자 “원론적 입장을 밝혔을 뿐”이라며 물러섰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의 실질 가치는 그대로 두고 액면가를 낮은 숫자로 변경하는 조치다. 가령 원화의 액면단위를 1000분의 1로 낮추면 현재 1000원은 1원이 된다. 거래 편의성과 통화의 대외적 위상 제고, 회계장부 처리 간편 같은 장점과 함께 새 화폐 제조 및 컴퓨터 시스템 교환 비용이나 불안심리 같은 단점도 따른다. 2005년 액면 가치를 100만 대 1로 낮춘 터키는 성공했지만 2006년 모잠비크와 2009년 북한의 시도는 실패한 사례로 꼽힌다.

▷한국은 10환을 1원으로 변경한 1962년의 화폐개혁 이후 54년간 국민총소득(GNI)이 4045배, 1인당 국민소득이 2120배로 급증했지만 화폐의 액면단위는 그대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1달러당 환율이 네 자릿수인 유일한 나라다. 한국의 국민순자산은 1경2359조 원(1경은 1조의 1만 배)으로 ‘경’이란 생소한 단위도 등장했다. 커피점에서 4500원짜리 커피를 4.5로 표기해 0을 줄이는 모습도 눈에 띈다.

▷서강대 교수 출신인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달러에 1000원이 넘는 데 따른 사회적 비용의 감소와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리디노미네이션 필요성을 제기했다. 득실이 엇갈리는 예민한 사안을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고 서둘러 결정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경제규모 확대에 맞춰 리디노미네이션의 사회적 논의를 해볼 시점은 됐다. 최 의원은 100 대 1 정도의 액면단위 변경을 제안했지만 1000 대 1 또는 10 대 1의 장단점도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한국은행 총제#리디노메이션#화폐단위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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