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작가 위작도 경매 목록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4일 03시 00분


[심층탐사기획/프리미엄 리포트/위작에 멍드는 미술계]
미술계 흔드는 유통시장 검은손
원로화가 항의해 리스트서 빼기도… 황학동-인사동서도 위작 쉽게 구입

“이 그림은 내 작품이 아니다. 경매를 당장 취소해 달라.”

최근 홍콩에서 열린 한 국내 대형 경매회사의 정기 경매를 앞두고 매물 목록을 검토하던 원로 화가 A 씨는 화들짝 놀라 전화를 걸었다. 자신이 1970년대 중반 완성했다는 작품의 이미지가 아무래도 미심쩍었던 것. 곧 실물을 확인한 그는 위작임을 확신하고 매물 리스트에서 빼 달라고 요청했다. A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다른 시기에 몇 번 그린 곡선 추상을 비슷한 느낌으로 그럴듯하게 흉내 낸 그림이었다”며 “경매사가 즉각 내리지 않고 망설여 더 놀랐다. ‘이거 안 빼면 내 모든 작품을 문제 삼겠다’고 한 뒤에야 요구가 수용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미술품 위작 유통은 희귀한 일이 아니다. 알려지는 경우가 극히 적을 뿐이다. 지난봄 서울에서 열린 한 메이저 경매에서 한국 근대미술 대표작가 B 씨의 그림이 수억 원에 낙찰됐다. 지난주 기자와 만난 한 감정 전문가는 “미국 대형 경매에 등록됐다가 유통 경로를 의심받아 철회된 그림이었다. 하지만 경매사의 자체 판정 외에는 제대로 된 감정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우환 천경자 등 유명 작가에 얽힌 위작 논란이 거듭되면서 미술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해졌다. 본보가 미술 전문가 31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4명이 “위작 문제로 인한 악영향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미술시장의 미성숙과 윤리의식 부재를 위작 의혹이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위작 유통 현장은 일상에서 멀리 떨어진, 은밀한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게 아니다. 취재팀은 최근 서울 황학동 풍물시장, 답십리 고미술상가, 인사동길 화랑거리 등에서 유명 작가의 작품 구매를 시도했다. 풍물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높이 30cm 정도의 조각상을 보여주며 “이름난 작가 M 씨의 작품인데 150만 원에 가져가라. 지방 갤러리 가서 찾으면 2000만 원 넘게 달라고 할 것”이라고 ‘떡밥’을 던졌다. 근거 없이 이중섭 천경자 작품이라고 내놓은 그림도 심심찮게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40대 작가는 “끊임없는 위작 논란으로 미술계 전체가 ‘범죄 소굴’처럼 여겨지고 있다. 개선의 실마리를 쥔 사람들이 손놓고 있기 때문이다. 열쇠는 유통시장에 있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미술가#이우환#천경자#화가#경매#위작#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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