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장 217일간 끌어온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 청사진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12월 1일 SK텔레콤이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에 CJ헬로비전 M&A 인가 신청서를 제출한 지 7개월여 만인 4일 공정위는 SK텔레콤이 합병을 통한 실익을 얻기 어려운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내놨다. 업계에서 ‘사실상 불허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M&A는 지난해 10월 말 처음 소식이 불거진 뒤부터 통신3사와 케이블TV사업자, 미래부 등 유관기관 사이에서는 전운이 끊이지 않았다. 11월 2일 SK텔레콤은 “생존 위기에 직면한 국내 유료방송 생태계를 회복하고 융합 콘텐츠에 투자하겠다”는 명분을 제시했다. 이에 KT와 LG유플러스를 비롯해 M&A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이동통신업계 1위 기업과 케이블TV 1위 기업이 합쳐져 시장질서가 무너질 것”이라고 맞섰다.
당초 일각에서는 이번 공정위의 심사 결과에 대해 SK텔레콤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조치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M&A 찬반 측의 논리가 팽팽했고, 공정위가 7개월을 넘기는 긴 시간 동안 고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정위가 SK텔레콤이 감당하기 힘든 시정조치를 요구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업계는 다시 한번 후폭풍에 휩싸이게 됐다.
우선 가장 큰 피해자는 케이블TV사업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 케이블TV 방송사업자들의 단체인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케이블TV협회)는 공정위 심사 결과 발표에 앞서 지난달 15일 “업계가 열악한 수익구조 등으로 위기에 봉착해 있다”며 “1위 업체인 CJ헬로비전의 M&A가 무산되면 케이블방송 업계의 전체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공정위의 판단으로 인해 KT와 LG유플러스를 비롯한 관련 기업들도 당분간 방송사업자에 대한 M&A 등 장기전략 수립에 차질을 빚게 됐다. 또 △지역 케이블TV 사업자들이 통신3사 인터넷TV(IPTV)에 뒤처져 생존 위기를 맞은 상황 타개 △IPTV 관련 규정을 정리한 ‘방송법 일부개정안(통합방송법)’ 마무리 △국내 미디어 융합 콘텐츠 확대 등의 과제도 남게 된다.
이날 공정위 심사보고서를 접한 뒤 SK텔레콤은 발칵 뒤집혔다. SK텔레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공정위의 심의보고서 내용은 주요 임원들에게만 전해졌고 이를 들은 임원들의 얼굴은 극도로 경색됐다”고 전했다. 공정위 보고서를 접한 장동현 SK텔레콤 사장은 5일 오전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했다. SKT는 공정위 전원회의 전까지 합병 조건을 완화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디어 전문가들은 “공정위가 급변하는 미디어 시장의 특성을 외면한 채 7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심의를 한 것 자체가 기업들의 경영 불확실성을 키웠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너무 엄격한 합병 기준을 적용하면 방통융합을 통해 미디어 산업을 발전시키고 키우겠다는 범정부적 전략을 실현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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