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비자들은 800%에 이르는 높은 관세율로 보호받는 쌀을 비롯해 오랫동안 유지돼 온 자국 농업 보호 정책에 따라 높은 농산물 가격을 감수하고 있다. 비단 일본뿐 아니라 선진국 여러 나라에서도 값싼 농산물 수입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보게 될 저소득 계층이 앞장서서 보호무역을 지지하곤 한다. 이처럼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배치되는 무역 정책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메구미 나오이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교수와 이쿠이 구메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그 이유를 찾고자 했다.
두 학자는 무역 정책에 대한 개개인의 선호 결정은 소비자로서 가격을 통해 얻는 효용의 측면에서 이뤄지기도 하지만, 노동시장에서의 피고용인이라는 정체성을 통해 이뤄지기도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즉, 소비자로서는 개도국에서 생산된 싼 가격의 수입품을 구매하는 것이 이득이라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게 맞지만, 수입이 늘어날수록 경쟁하는 국내 산업의 고용이 위축돼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 역시 높아져 노동자 입장에서는 보호무역을 지지하게 된다는 논리다.
두 학자는 2007∼2008년 일본 최대 온라인 포털 사이트인 야후저팬을 통해 1200여 명이 참여하는 온라인 설문조사를 설계했다. 특히 이들은 피험자들을 본격적인 설문에 앞서 △슈퍼마켓, 가전매장 등의 사진(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을 부각시키는 시각적 자극)을 보게 한 집단 △공장, 사무실 등(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부각시키는 시각적 자극)의 사진을 보게 한 집단 △아무런 사진도 제시하지 않은 집단 등 세 그룹으로 나눈 후 수입품에 대한 태도를 비교했다. 분석 결과, 소비자로서 시각적 자극을 받은 경우 피험자들로 하여금 수입 상품 증가에 대해 평균 9.5% 정도 긍정적인 대답을 증가시키며 부정적인 반응은 13%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노동자로서 시각적 자극을 받은 경우 찬성하는 비율을 3.8% 감소시켰다. 이처럼 소비자들이 수입품에 대해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기업들은 잘 분석해, 소비자로서 효용을 강조함으로써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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