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말 현재 서울 인구가 28년 만에 1000만 명 아래로 내려섰고 2015년 한 해 동안 전년보다 11.2% 증가한 1만1959가구가 귀농했는데 수도권과 50, 60대 가구주가 각각 반을 넘는다고 한다. 수도권에서 탈출한 50, 60대면 내가 모델이지만 통계 기준상 나는 단순 이주민이다.
혹시 귀농인이 될 수 있을까 싶어 김천시의 ‘귀농귀촌 교육’에 참가했다. 정년퇴임 후 텃밭 가꾸기에 푹 빠져 있는 60대 중반의 전직 교사, 상당히 구체적인 사업계획서를 들고 휴가를 내 서울에서 달려온 30대 중반의 대기업 동료 둘, 낭만적인 전원생활의 꿈을 품고 있는 30대 초반의 공기업 근무자까지 다양한 연령과 직업, 배경을 가진 21명이 참가했다. 이미 농사를 짓고 있어 귀농인의 자격(?)을 갖춘 사람부터 농사지을 땅 한 뼘 없고 길러 본 거라고는 화초가 전부인 나 같은 사람까지.
몇몇 성공사례도 접했다. 외환위기 때 어느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신청서를 들고 하늘만 바라보던 선배들 모습을 보고 30대 초반부터 땅을 파기 시작한 김정훈 대표. 그는 참나무 톱밥을 채운 비닐봉지에 종균을 배양해 표고, 노루꽁댕이, 영지버섯을 길러 팔기도 하고 가정에서도 직접 길러 먹을 수 있게 해 이제는 웬만한 월급쟁이 부럽지 않다면서 사물인터넷(IoT) 기술로 버섯재배사의 온습도를 원격조종하는 자신을 경영자라 자칭했다.
먹고 자고 가꾸며 제대로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6차산업의 시범공간을 가질 꿈을 키우고 있는 이정화 대표는 인터넷을 활용한 농산물 직접 판매 전문가인데 귀농 2년 차 때 예초기 파편에 한쪽 시력을 잃었을 때가 가장 큰 위기였다고 했다. 해외 근무가 싫어 10여 년 전 귀농해 3.3m²당 6만 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국내 최고 수준의 복숭아밭을 일군 최민용 대표. 그의 뒤를 잇기 위해 복숭아 재배 마이스터 과정을 밟고 있다는 미술대학 출신의 아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같이 “안 되면 농사나 짓지”라는 상투적인 말을 거부한다. 충분한 준비와 굳은 각오가 없다면 귀농에 실패한다는 충고를 빠뜨리지 않았다. 귀농의 돌아갈 귀(歸)자만 믿고 마치 외갓집 방문하듯 결정해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리라. 또 하나 귀농을 위한 지원은 지방자치단체별로 상당한 지원금부터 대출, 교육, 농기구 대여, 멘토링, 인턴 농부까지 아주 다양하고 많은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정확하지 않은 소문이나 주변 인맥에 의존하고 있어 예비 귀농인들이 정부를 못 따라가고 있는 듯했다. 어디서든 어떤 삶이든 정보가 중요하다. 정무(錠戊·필자의 호)농장 대표가 될 수 있을까?
※필자(54)는 서울에서 공무원, 외국 회사 임원으로 일하다 경북 김천으로 내려가 대한법률구조공단 본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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