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특정한 곳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사실 어느 곳으로도 돌아갈 수 없다. 추방과 귀환의 개념은 고향, 고국을 내포하고 있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줌파 라히리·마음산책·2015년)
영화 ‘브루클린’은 참 매력 없는 로맨스를 그린다. 하지만 인생에 관한 영화로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일랜드 태생의 에일리스가 미국 뉴욕에 자신의 뿌리를 옮겨 심는 과정이 흥미롭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에일리스는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인 남편을 만나면서 뉴욕에 서서히 뿌리를 내린다.
언니의 죽음으로 잠시 아일랜드로 돌아간 에일리스는 그곳에서 만난 남성과 함께 고향에 정착하고 싶어 갈등에 빠진다. 에일리스의 마음을 흔든 건 익숙한 곳에 주저앉고 싶은 본능이다. 떠나온 곳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다.
에일리스를 보면서 인도계 미국 작가인 줌파 라히리가 떠올랐다. 라히리는 미국 현대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다.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상인 퓰리처상(문학)을 받을 만큼 영어를 아름답게 구사한다. 하지만 그는 이 책에서 줄곧 영어에 벽을 느껴왔다고 고백한다. 완벽한 영어를 써도 사람들은 그에게 이방인이란 딱지를 붙였다. 부모의 언어인 벵골어(인도)와 영어의 세계를 오가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언어와 언어가 부딪치는 팽팽한 긴장 속에 평생을 살아온 라히리는 제3의 언어에서 안식을 찾았다. 이 책은 작가가 이탈리아에 살면서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다. 이탈리아어는 라히리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첫 언어다. 익숙한 영어 대신 서툰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면서 작가는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기쁨을 느낀다.
우리는 모두 ‘떠나온 곳’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그곳은 어떤 도시나 국가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품일 수도 있다. 에일리스처럼 뿌리를 옮겨 심은 사람도 있고, 라히리처럼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떠나온 곳을 간직한 사람들이 모여든 사회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른다.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는 우리 모두의 초상(肖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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