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절반이 ‘세금 제로’… 무분별 비과세 줄이는게 첫단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0일 03시 00분


[세제개혁, 지금 안하면 못한다]<下> 비과세-감면제도 손질로 ‘넓은 세원’ 확보를

“소득세 개편을 고려하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국회가 “우리나라 근로소득자 가운데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자 비율이 절반에 이른다”며 세제 개편의 필요성을 제기하자 이같이 답했다. 면세자가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세원(稅源)이 줄어들었다는 뜻으로, 향후 세수(稅收)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한편으론 주로 부자들이 거둬들이는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 기준이 지나치게 느슨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소득세 개편의 기준을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 원칙에 맞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구체적으로는 △무분별하게 도입된 비과세·감면제도의 전면 재검토 △면세자 축소에 따른 ‘서민 증세’ 논란 방지 △자산소득 과세 강화를 통한 조세형평성 제고 등이 주요 과제로 꼽힌다.

○ 조세 기본원칙 역행하는 한국

박근혜 정부는 정권 출범부터 ‘비정상의 정상화’를 국정 어젠다로 삼았지만 소득세는 이에 역행하고 있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조세 기본원칙이 한국에서는 ‘넓은 누락, 많은 환급’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박근혜 정권 초기인 2013년 전체 근로소득자 중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32.4%였다. 하지만 2013년 말 세액공제 혜택을 늘린 소득세법 개정과 2015년 초 연말정산 파동을 거치면서 비과세·감면 혜택이 확대됐고 결과적으로 과세 기반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4년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48.1%로 전년보다 15.7%포인트나 늘었다.

전문가들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꾼 방향성은 맞지만 지나친 공제 남발로 중산층 근로자(총급여 5500만∼7000만 원)의 세 부담까지 완화돼 세원이 잠식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요즘은 중간 소득계층 자영업자가 오히려 근로자보다 세금을 많이 내는 상황”이라며 “과거에는 자영업자와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근소세 공제를 확대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축소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비과세·감면 혜택은 종종 ‘달콤한 독약’으로 통한다. 가만히 놔두면 국가 재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지만 이미 도입된 비과세·감면 혜택을 없앨 경우 저소득층의 강력한 저항을 불러올 수 있어서다. 게다가 조세정책에 대한 신뢰도도 추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가 과감히 메스를 들이대고 정치권이 불만에 찬 국민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조세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다만 세수 기반 확대는 소득 확대 정책과 함께 추진해야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근로소득자의 소득 분위별 소득을 보면 거의 50%가 연봉 2000만 원 이하”라며 “저임금 근로자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 현실화를 추진하면서 그에 상응해서 면세자 비율을 축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 자산소득 과세하고 저소득층도 적정 세금 내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조세 형평성을 위해 개인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가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은 개인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가 상당히 취약한 나라로 꼽힌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표적인 것이 주식 양도소득세”라며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에 부합하려면 주식 양도소득에도 과세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주식 거래에 대한 세금은 미미한 수준이다. 현재 유가증권시장에서 거래되는 상장주식의 양도차익에 대해서는 지분 1% 이상 또는 시가총액 25억 원 이상을 보유한 대주주에 대해서만 20% 단일세율로 과세한다. 일반투자자는 증권거래세만 부담하면 된다. 그 결과 2014년 말 기준 전체 상장주식 개인투자자 463만 명 가운데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은 4255명으로 0.1%도 되지 않았다. 재벌 총수 일가와 같은 주식시장 0.1%의 최상위 부자가 아니면 수억 원대 주식을 거래해 수익을 얻더라도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부동산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행법상 1주택 소유자는 기준시가가 9억 원 이하일 경우 월세 소득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또한 기준시가가 9억 원을 초과하거나 2주택 이상인 경우에도 연간 임대소득이 2000만 원을 넘지만 않으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부동산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체계가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박 교수는 “소득세만 인상할 경우 근로소득자나 사업소득자의 세 부담액만 커질 수 있다”며 “그동안 형평성이 낮았던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모든 국민이 납세 의무를 지고 있는 만큼 저소득층도 적절한 세금을 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가 현재 13만 원인 표준세액 공제를 축소하거나 최저한세(最低限稅)를 도입해 누구나 최소한의 세금은 납부하도록 하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저소득층의 세 부담이 늘어남에 따라 ‘서민 증세’라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객관적 자료로 납세자인 국민을 설득해 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세종=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세제개혁#비과세#세금#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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