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을 수도 있다. 단, ‘그때’와 ‘지금’의 시차가 너무 짧다면 정오(正誤)를 잘 따져봐야 한다.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은 경제부총리였던 지난해 여름 기자들과 만나 “롯데는 국내에 있는 한국 기업이다. 아니라면 그 오랜 세월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있었겠나”라고 말했다. 그의 논리를 빌리자면 그때 롯데를 일본계라고 비난하는 태도는 틀렸다.
국부유출이라는 대형 악재
지난달 10일 시작된 검찰의 롯데 수사는 ‘롯데는 일본 기업이며 대중의 반감을 사고 있다’는 사회 분위기를 깔고 있다. 일본계가 지배하는 롯데에 대한 비난은 1년도 지나지 않아 맞는 게 됐다.
정부는 국내 롯데 계열사가 사실상 ‘일본 기업’인 현실을 애초 알고 있었다. 롯데그룹은 인허가로 먹고사는 계열사의 특성상 혐의를 잡고 털면 자욱한 먼지가 나게 돼 있다. 문제와 풀이방식은 그대로인데 답이 바뀌었다면 원래 없던 변수가 끼어들었다는 뜻이다.
법조 비리로 몸을 낮추던 검찰이 급하게 움직인 것은 롯데가 호텔롯데의 증시 상장을 서두르면서부터다.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호텔롯데의 주주 99%는 일본계다. 호텔롯데가 상장한다면 기존 일본인 주주들이 보유한 주식을 한국인을 포함한 다른 주주들에게 매각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렇게 하면 일본인 주주 비율은 떨어지겠지만 1조 원이 넘는 주식 매각대금이 일본으로 빠져나간다. 호텔롯데가 지금의 지배구조를 유지한다고 해도 배당금 명목으로 매년 수백억 원이 유출된다. 이래저래 국부유출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외통수에 빠진 현실을 뒤늦게 깨닫고 몸이 달았다.
국부유출 논란은 처음에는 한쪽에서만 갑론을박하는 ‘찻잔 속 태풍’이지만 점점 세력을 확장해 나라를 집어삼키는 허리케인이 된다. 2003년 외환은행을 론스타로 매각한 결정이 국부유출 논란으로 번진 과정을 보면 그렇다.
청와대가 ‘롯데 리스크’를 우려하고 있다면 40일간 널뛰듯 진행된 백화점식 수사의 진짜 이유가 호텔롯데의 상장을 막는 데 있었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 1967년 롯데제과 설립 이후 롯데는 진보정권에서도 사세를 확장했지만 롯데호텔 건립, 제2롯데월드 건축 등 굵직굵직한 이권사업은 보수정권에서 주로 결정됐다. 국부유출 논란은 야당보다 여당에 더 큰 부담을 주는 악재다.
그동안 롯데는 자신들이 왜 수사 대상이 됐는지 몰랐다. 지난달 검찰 수사 직후 “연말까지 상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신동빈 회장의 엉뚱한 발언은 현재 롯데와 현 정부의 연결고리가 끊긴 상태임을 보여준다.
앞으로 검찰은 롯데 비자금을 캐는 동시에 롯데에 국부유출 논란을 잠재우고 지배구조도 투명하게 하는 방안을 직간접 경로로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건 양립할 수 없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다. 국부유출을 막으려면 상장을 포기해야 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면 상장을 해야 한다. 상장차익을 사회공헌기금으로 내놓는 정치적인 거래가 있을 수 있지만 정도(正道)는 아니다. 오히려 폭발력이 큰 뇌관을 현 정부에 심어두는 셈이다.
용두사미 포스코처럼 끝나나
어제 검찰이 롯데홈쇼핑 강현구 사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지난해 용두사미로 끝난 포스코 수사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롯데 수사는 지금 성패의 기로에 있다.
‘롯데마트에서 생활화학제품을 계속 구입해도 되는가. 롯데홈쇼핑을 믿고 이용해도 되는가….’ 소비자는 이번 수사가 이런 질문에 답해 주길 원한다. 이것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롯데 수사도 지금까지의 막장 수사극과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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