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전북 고창군 상하면 상하농원 내 동물농장에서 어린이들이 가공하지 않은 생유를 송아지에게 먹이고 있다. 상하농원은 이 밖에 소시지 빵 치즈 아이스크림 등을 직접 만드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고창=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아빠, 양에게 먹이 더 줘 볼래요.”
경기 부천시에서 온 박다은 양(4)은 동물농장에 있는 흰 양에게 건초를 주는 체험에 푹 빠졌다. 먹이를 먹으려고 혀를 날름거리는 양들의 모습에 아이들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넓게 펼쳐진 초록빛 들판 위를 여유롭게 거니는 젖소들. 농장 곳곳의 공방(工房)에서는 장인들이 유기농 햄, 빵을 만든다. 21일 전북 고창군 상하면 상하농원의 알프스산맥 산골마을 같은 풍경이다.
상하농원은 농장과 체험시설 등을 한자리에 모은 농촌 테마파크다. 10만 m² 터에 각종 작물을 재배하는 텃밭과 치즈 빵 소시지 등을 만드는 체험시설, 지역 농축산물을 파는 시장이 들어서 있다.
○ ‘짓다 놀다 먹다’ 체험형 테마파크
상하농원은 매일유업이 농림축산식품부, 고창군과 함께 370억 원을 투자해 조성했다. 대체로 농민들은 대기업의 농업 진출을 꺼린다. 농민의 일자리와 수입을 빼앗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상하농원은 대기업과 농민이 상생하는 모범적인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상하농원 안에 있는 ‘파머스 마켓’은 지역 농민들이 생산한 유기농 농축산물을 판매한다. 수수료도 10% 내외로 대형마트 등에 비해 크게 낮아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많다.
내년 초에는 농장 내 숙박시설인 ‘파머스 빌리지’와 스파 시설이 문을 연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케이블TV 예능 프로 ‘삼시세끼’ 촬영지로 유명해진 고창군 내 구시포마을, 선운사 등을 들르도록 해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 위기정 상하농원 매니저는 “농원 직원 중 40%가 고창군에 사는 청·장년층”이라고 말했다.
올해 4월 문을 연 뒤 3개월 만에 1만 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이 농장은 2020년까지 누적방문객 100만 명을 유치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중국, 일본 등에서 오는 해외 관광객 유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가족과 함께 상하농원을 찾은 김동희 씨(36)는 “도시에서만 살던 아이들이 자연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라고 말했다.
○ 흰 우유 대신 ‘유기농 식품’
저출산 등의 이유로 우유 소비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상하농원 모델이 국내 유가공 업체들의 활로가 될지 주목된다. 2000년대 초반 매일유업의 창업주인 고(故) 김복용 선대회장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기농 식품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임원들이 ‘불황으로 시장이 위축돼 투자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렸지만 김 회장은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김 회장이 제일 먼저 추진한 상품은 천연치즈였다. 와인 붐이 일면서 천연치즈 시장이 커진 일본처럼 한국도 변화가 찾아올 것으로 판단했다. 이런 이유로 땅이 비옥하고 물이 맑은 상하면에 2003년 치즈공장을 세우고 지역명을 따 브랜드명을 ‘상하치즈’라고 지었다. 이 지역은 2013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이후 매일유업은 고창군 일대에 유기농 국제 인증요건을 갖춘 14개 목장을 세웠고 유기농 유제품 브랜드 ‘상하목장’을 선보였다. 상하목장은 1년 만에 국내 유기농 우유 시장 점유율 50%를 차지했다.
매일유업은 2008년에 상하농원 설립 계획을 세웠지만 올해 4월 22일 개장하기까지 만 8년 정도가 걸렸다. 유기농 농축산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건 쉽지 않았다. 유기농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흙을 만드는 데에만 3년의 시간이 들었다.
이런 노력이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중국의 한 농촌 테마파크가 상하농원 모델을 참고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해 왔다. 매일유업은 상하농원을 통해 유럽, 호주가 지배하고 있는 중국의 프리미엄 유제품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조성형 매일유업 부사장은 “상하농원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들이 자국으로 돌아가면 매일유업 제품을 찾을 것”이라면서 “이 농원을 토대로 전 세계에 유제품을 수출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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