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4시경 강원 정선군 강원랜드. 평일인데도 카지노 안에는 휴가철 관광객들을 비롯한 손님 5600여 명이 블랙잭과 바카라, 룰렛, 슬롯머신 등의 테이블과 기기에 삼삼오오 모여 도박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날 카지노엔 호기심에 들뜬 관광객들 사이로 상습 도박꾼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여럿 보였다. 이들은 무표정한 초점 없는 눈으로 몇 시간째 슬롯머신 버튼을 두드리거나 어깨에 담요를 두르고 반쯤 누운 자세로 앉아선 손에 쥔 5만 원짜리 지폐를 기계에 수시로 넣고 있었다. 슬롯머신 앞에 6시간 넘게 앉아 있었다는 한 40대 남성은 “한 번 할 때마다 50만∼100만 원은 그냥 쉽게 나간다”며 “5만 원이 1분 만에 없어지곤 하지만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 돈 되는 건 다 맡기고 도박
도박에 빠져든 많은 사람은 여전히 거액의 빚까지 져 가며 카지노를 찾고 있다. 강원랜드 근방엔 이들을 대상으로 영업 중인 대출 전당포 70여 곳이 곳곳에 밀집해 있다. 전당포들은 돈이 떨어진 꾼들이 언제든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대부분 24시간 영업을 한다. 전당포 관계자들은 “도박꾼들은 타고 온 외제차는 물론이고 노트북 컴퓨터, 명품 가방, 골프채, 휴대전화까지 ‘돈 되는 것’은 모조리 맡긴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차량은 다른 물품에 비해 높은 금액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차종, 연식 등에 따라 대출 가능한 금액은 제각각이지만 대략 500만∼2000만 원 선에서 대출금이 정해진다. 한 전당포 사장은 “얼마 전엔 서울 강남에 사는 한 20대 남성이 엄마의 외제차 BMW를 맡기고 1500만 원을 대출해 갔다”고 말했다. 전당포마다 차량을 맡기는 손님은 많게는 하루 2, 3명, 일반 물품을 맡기는 손님은 많을 땐 하루 7명까지도 찾아오고 있다.
하지만 전당포 손님의 절반 이상은 도박으로 돈을 잃어 물건을 회수해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 전당포 주차장엔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승용차 40∼50대가, 전당포 안엔 5, 6년씩 맡겨진 채 방치된 명품 가방, 노트북 컴퓨터 등이 쌓여 있었다. 전당포 관계자는 “빚을 갚고 맡긴 승용차를 되찾은 뒤에 이 차를 또 맡기는 사람들이 90%가 넘는다”며 “그런 경우 나중엔 되찾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한 사람 중 다수가 이곳 전당포 주변 식당이나 모텔, 다방에서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며 눌러앉아 있다”고 했다.
○ 중독자 출입 제한 규정 강화해야
카지노를 찾는 도박꾼들 중엔 이처럼 도박 중독에 가까운 위험 손님이 늘고 있다. 강원랜드는 도박 중독 예방 차원에서 카지노에 한 달에 15일 이상을 두 달 연속 드나들거나 분기(3개월)별로 30일 이상 카지노에 출입한 사람을 대상으로 카지노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 가족이나 본인이 의사를 밝혀 출입 제한을 신청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강원랜드 측의 도박 중독 예방 조치가 너무 느슨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재 강원랜드 운영 내규에 따르면 출입 제한 상담 등을 받으면 바로 풀린다. 2일 강원랜드 내 중독관리센터를 찾은 한 남성은 “몇 년 전 장모님이 나에 대해 출입 제한 신청을 한 것을 해제하려고 다음 달 9일 상담 일정을 잡았다”면서 “뭘 상담할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간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출입 제한 기간을 정하는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가족이나 본인이 출입 제한 조치를 신청할 땐 당사자가 1개월이든 영구 출입 제한이든 제재 기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분기별 30일을 초과해 출입한 경우도 도박 중독 예방 관련 교육책자를 받거나 출입 일수 준수 확인서만 작성하면 출입 제한이 즉시 해제된다. 또 내국인의 카지노 출입이 한 달에 15일까지 가능해 월 6일로 제한된 싱가포르보다 느슨하다.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출입 제한 해제 여부를 가리는 심사 절차는 물론이고 출입 제한 기간을 정하는 주체도 객관성 있는 대상을 선정해야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며 “도박 중독자가 계속 강원랜드를 출입하지 못하도록 관련 규정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강원랜드 측은 “도박 중독은 개인의 경제 상황, 심리 상태 등 환경적 요인에 좌우되는 정신의학적 개념”이라며 “출입 일수 제한 기준이 어느 정도가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획일적 잣대를 적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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