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채권은행단의 올해 대기업 신용위험 정기평가 결과 32개 대기업을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했다.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이나 법정관리(기업 회생절차) 신청 대상인 C, D등급을 받은 기업 중 조선 건설 해운 철강 석유화학 등 5대 취약업종이 53%를 차지했다. 상대적으로 나았던 전자업종도 작년 7곳, 올해 5곳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돼 재무구조 악화의 파장이 거의 전 업종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문제는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가 모두 정상인 B등급으로 분류되면서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금감원은 “조선 3사는 자구계획, 대주주의 경영정상화 의지 등을 판단해 채권은행들이 B등급을 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부채비율이 7300%에 이르는 대우조선마저 배제한 것은 이해가 안 된다. 대우조선은 올해 1∼3월 작성한 사업보고서에서 지난해 영업손실 규모를 1200억 원가량 축소 조작한 혐의로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도 경영진과 대주주의 말을 믿고 자구계획 이행을 지켜보겠다는 금감원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작년 5월 취임한 정성립 사장은 과거의 부실을 한번에 털어내는 ‘빅배스(Big Bath)’ 과정에서 전임 남상태, 고재호 사장 재직 시 5조5000억 원 분식회계가 벌어진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작년 말 정부가 4조2000억 원의 자금을 지원했는데도 현 경영진이 회계사기를 벌였다면 심각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다. 추가로 드러난 회계사기 의혹을 반영하지 않고 정상 기업으로 분류한 채권단이나, 이런 평가 결과를 그대로 추인한 금감원의 결정은 납득하기 힘들다
올해 구조조정 대상 대기업에는 한진해운 현대상선 STX조선해양 등 이미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기업이 상당수 포함돼 ‘숫자 부풀리기’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부실 조짐은 있지만 채권단 지원 없이도 경영정상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B등급과 C등급 사이의 ‘자체 경영개선 프로그램 대상 기업’도 26개사나 된다. 뚜렷한 기준 없이 금융당국이나 채권단의 자의적 결정으로 좌우하는 ‘회색 지대 기업’은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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