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서울 중구 K뱅크 준비법인 사무실에서 만난 이진희 차장(왼쪽)과 석보현 과장, 이승욱 대리(오른쪽)가 허공 위로 떠오른 드론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퇴근 시간인 오후 6시경 사무실 한편에서 ‘윙∼’ 소리가 들려온다. 책상 위로 떠오른 소형 드론(무인비행기)이 갑자기 몸체를 뒤집는 묘기를 선보였다. 드론을 조종하고 있는 직원에게 다른 직원이 다가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스타트업 회사의 모습이 아니다. 올해 말 영업을 시작할 예정인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 준비법인의 서울 중구 사무실 풍경이다. 4일 오후 아무도 걸어보지 않은 ‘인터넷뱅커’의 길을 선택한 K뱅크 직원 3명을 만나봤다. ○ IT기업보다 더 IT기업 같은 은행
“엊그제는 사무실에 무선조종자동차(RC카)가 책상 사이를 돌아다니더라고요. 스트레스도 풀리고 회사에서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워요.”
K뱅크 준비법인 사무실에서 만난 이승욱 고객센터 대리(29)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K뱅크는 9월경 본인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난달 초부턴 금융결제원과 연동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22일부터는 고객이 실제로 K뱅크를 이용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거래 전 과정을 테스트할 예정이다. 직원 수도 내년 초까지 200여 명으로 늘릴 방침이다.
KT에서 옮겨온 이 대리는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K뱅크의 장점으로 꼽았다. “회식 때는 ‘3무(無)’ 정책을 지켜야 돼요. 첫째, 건배사는 하고 싶은 사람만 해라. 둘째, 술은 마시고 싶은 사람만 마셔라. 셋째, 자기소개를 강요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회식 전에 건배사로 뭘 해야 하나 늘 골치가 아팠는데 이젠 아무도 안 시켜요.(웃음)”
최고책임자부터 막내까지 모두 함께 이용하는 단체 메신저 방에선 워크숍 장소 투표도 하고 인터넷에서 본 재밌는 영상 등 소소한 이야기들도 나눈다. 늦은 밤 직원 복지와 관련된 건의사항도 올라온다. 여기에는 담당자와 임원들의 피드백이 이어진다. 네이버에서 옮겨온 이진희 채널혁신팀 차장(37·여)은 “복장이나 일하는 방식도 인터넷기업처럼 자유롭다”며 “K뱅크 직원 100명 중 40명이 드론을 공동구매해 갖고 있다”고 말했다. ○ 외인부대의 도전
K뱅크 직원들은 인터넷회사, 통신회사, 금융권 등에서 모인 외인부대다. 이 때문에 같은 것을 지칭하는 데도 사용하는 용어가 달라 웃는 일도 종종 생긴다.
세 사람의 입에서 ‘현업(은행권에서 주로 쓰는 말로 사업 부서를 의미)’ ‘부러뜨린다(특정 이슈와 관련된 논의를 끝낸다는 의미)’ 등 특정 업계에서만 쓰는 용어와 은어들이 튀어 나왔다. 이 차장은 “다양한 사람이 모였기 때문에 더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며 “은행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은행스럽지 않은 IT 기반의 새롭고 다양한 상품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부터 출근한 석보현 플랫폼개발팀 과장(32·여)은 세상에 나온 지 5개월 된 아이를 둔 초보 엄마다. 전 직장에서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개월을 쓴 상태에서 사표를 내고 K뱅크에 입사했다. 1년간 육아휴직을 사용해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회사였다. 주변에선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을 왜 관두냐”며 말렸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를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망설이는 마음도 컸다.
“우리나라에 없던 은행이 새로 생기는 거잖아요. 지금까지 은행의 IT 솔루션을 주로 만들었거든요. 어떤 형태로 운영될까 너무 궁금했어요. 지금 아니면 찾아오지 않을,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볼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남편도 IT 쪽 일을 하기 때문에 그런 제 마음을 잘 이해해주더라고요.”
이들이 회사를 옮긴 뒤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는 “도대체 인터넷전문은행이 뭐야?”다. 인터넷으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다는 개념이 낯설기 때문이다. 이 차장이 들려주는 답은 간단하다.
“‘은행을 안 가도 되는 은행’이라고 말해줘요. 인터넷 검색창에 ‘은행’을 한번 쳐 보면 첫 번째 연관검색어가 영업시간이에요. 은행 영업점에 가기 위해 사람들이 포털사이트에 물어보는 거죠. 시간 맞춰 영업점을 가야 한다는 게 고객에겐 불편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급여 수준을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다. 실제 연봉이 올랐느냐고 묻자 세 사람 모두 “정확히 말해줄 순 없다”고 답했다. 다만 “이직 전에 연봉 등 처우도 중요하게 고려했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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