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 쇄신의 밑그림을 그릴 KDB혁신위원장에 4일 선임된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틀 뒤 기자를 만나자마자 휴대전화부터 내밀었다. “문자메시지가 엄청나게 오더군요. 거의 모든 내용에 빠지지 않고 들어 있는 표현이 있더군요. ‘똑바로 하라’는 겁니다.”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등에서 국내 최고의 전문 인력을 보유한 국책은행이다. 그간 적극적인 자금 지원으로 신산업 발굴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하지만 산은이 자금을 댄 기업이 하나둘 망가지고, 각종 비리까지 드러나면서 산은의 체면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혁신위원회는 벼랑 끝에 내몰린 산은이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로 쇄신을 위해 내놓은 ‘생존 카드’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비리가 세상에 알려진 뒤 산은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부실기업의 막힌 혈관을 뚫고 썩은 살을 도려내는 집도의가 되기는커녕 자회사에 ‘낙하산’을 내려보내 한계기업의 부실을 키운 ‘돌팔이 의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똑바로 하라’는 김 교수의 휴대전화 속 날 선 메시지야말로 믿었던 산은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을 대변하는 목소리다.
김 교수는 이틀간 받은 수많은 메시지 중 금융권 전문가나 학계 동료의 ‘격려 문자’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혁신위의 역할은 9월까지 외부 인사의 시선으로 산은 조직을 점검하고 재도약에 필요한 마스터플랜을 짜는 것이다. 금융권 안팎에선 ‘두 달 만에 오래된 적폐를 씻어내는 쇄신안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는 부정적 인식도 적지 않다. 그러니 알 만한 사람이라면 덕담을 권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 분이 매우 시니컬하게 ‘거기 왜 갔느냐’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쉽게 바뀌지 않는 조직인데, ‘얼굴마담’이나 하고 말 거라는 걱정이었어요.”
김 위원장은 주위의 걱정에도 과거 산은금융지주 사외이사를 지내는 등 내부 사정을 알기에 발 벗고 나섰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문제점은 누구나 거의 다 알고 있지 않느냐. 핵심은 실행”이라고 단언했다.
산은 쇄신이나 혁신위의 활동을 ‘지나가는 소나기’로 여기는 일부 산은 구성원의 동떨어진 현실 인식이 그래서 더 안타깝다. 벌써부터 혁신위에 대해 일부 직원은 “점령군 같다”거나 “어차피 쇼 아니겠느냐”고 비아냥거린다. 9월 발표될 ‘혁신 로드맵’이 쇼로 끝날지, 금융권 안팎의 냉소를 뒤엎는 신뢰 구축의 계기가 될지는 구성원들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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