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나는 나다”… 차별도 갈등도 무력화시킨 긍정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9일 03시 00분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그 향기는 여전한 것을. ―GO(가네시로 가즈키·북폴리오·2006년)

주인공 ‘스기하라’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발칙한 고등학생이다. 재일교포 3세인 그는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니다. 믿는 건 주먹뿐이다. 권투 선수였던 아버지와 실전에 가까운 훈련을 하며 앞니를 내줬다. 대신 얻은 권투 실력 덕에 숱한 따돌림 속에서도 ‘품위’를 유지한다. 그는 심지어 똑똑하기까지 하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니체, 미토콘드리아, 디아스포라 등과 같은 어려운 것들을 갖다 붙인다. 영화 ‘비트’ 속 정우성의 ‘뇌섹남’ 버전인 셈이다.

삶은 쉽지 않다. 총련에서 민단으로 전향한 아버지 때문에 다니던 총련계 고등학교 선생들에게 지독한 괴롭힘을 당한다. 전학 간 일본 고등학교에서의 생활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어렵게 사귄 여자친구는 “한국인은 피가 더럽대”라는 말을 남긴 채 떠난다. 가장 친한 친구는 일본인 고등학생이 휘두른 칼에 쓰러진다.

이런 상황에서도 소설은 유쾌하다. 고민과 고난이 연속되지만 스기하라는 이렇게 선언한다. “이쯤에서 미리 밝혀두겠는데 이 소설은 나의 연애를 다룬 것이다. 그 연애는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자본주의니 평화주의니 귀족주의니 채식주의니 하는 모든 ‘주의’에 연연하지 않는다.”

스기하라의 태도에서 살면서 경험하는 다양한 한계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머릿속에 수많은 벤다이어그램을 그려놓고 타인을 구분한다. 지지하는 정당과 성별, 피부색,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꼬리표를 붙인다. 때때로 이 꼬리표는 니스 해변을 질주하는 화물차처럼 폭력적이다.

스기하라는 이런 벤다이어그램을 신나게 때려 부순다. “나는 나다”라고 외치며 모든 꼬리표를 거부한다. 작가 역시 스기하라와 같은 재일교포다. 이 책이 작가의 자전적 소설임을 알고 나면 그가 맨 앞에 인용한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대목이 의미심장해진다. “이름이란 뭐지?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

차별과 갈등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왕이면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기를 권한다. 소설 속 누군가 말했듯, 혼자서 묵묵히 소설을 읽는 인간은 집회에 모인 100명의 인간에 필적하는 힘을 갖고 있으니까.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차별#갈등#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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