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 철강업계에서 대형 인수합병(M&A)이 잇달아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만 ‘스케일 업’ 전략에서 동떨어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철강산업 구조조정 방안이 일부 공급과잉 제품 감산 등 미세조정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9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중국 허베이강철(河北鋼鐵·세계 2위)은 서우두강철(首都鋼鐵·9위)과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합병이 성사되면 지난해 기준 연간 조강생산량이 7630만 t에 이르는 또 하나의 ‘철강 공룡’이 탄생하게 된다.
현재 세계 1위는 2006년 아르셀로와 미탈스틸이 합병한 아르셀로미탈로 조강생산량은 연간 9714만 t이다. 아르셀로미탈과 허베이-서우두강철(합병가정)의 생산규모는 포스코(4위·4197만 t)의 각각 2.3배, 1.8배에 이른다.
앞서 6월 말에는 바오산강철(寶山鋼鐵·5위)과 우한강철(武漢鋼鐵·11위)의 합병계획도 발표됐다. 중국 정부는 이 합병회사를 ‘남중국 철강그룹’으로, 허베이-서우두 연합군을 ‘북중국 철강그룹’으로 만들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에서의 움직임도 다르지 않다. 일본 신일철주금(3위·4637만 t)은 올 2월 닛산제강 인수를 발표하면서 5000만 t 이상의 연간 생산능력을 확보했다. 이 회사는 2012년 스미토모금속을 인수한 뒤 자동차강판과 에너지용 강관 제품에 주력하면서 2000억 엔(약 2조2000억 원) 이상의 효과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국내 철강산업 구조조정 방안은 너무 소극적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한국철강협회에 중간보고서 형태로 제출한 철강업계 구조조정 방안은 포스코와 현대제철(13위·2048만 t) 등 대형 철강사보다는 중소업체들의 통폐합과 일부 제품 감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수시장 정체와 수출 부진으로 가동률이 떨어진 중소 강관업체들의 설비를 대형 업체들이 인수하고 중국산의 공습으로 위기에 빠진 철근은 인천, 당진, 포항 3곳을 생산거점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공급과잉 해결에만 치중하느라 근본적인 ‘글로벌 경쟁력 제고’ 방안은 실종돼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규모 면에서 글로벌 업체들과 해볼만 한 싸움이 되려면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힘을 합치는 방안도 검토해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두 회사의 합병을 당장 추진하기는 어려운 만큼 이들이 연합군을 결성해 각자 경쟁력 우위 제품 생산에 주력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철강산업 구조조정을 소극적으로 하다 보면 글로벌 산업 무게중심이 중국으로 옮아가는 속도가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며 “규모를 키우는 것만이 정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대형 철강사들의 경쟁력 회복 방안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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