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서 미래 캐는 청년들… 편의점 진열대 ‘꼬마감자’ 올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1일 03시 00분


[創農의 진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1>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청년 창농인

지난해 ‘A FARM SHOW’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전성호 치즈명가 대표는 직접 만든 치즈 소스로 맛을 낸 면 요리 식당 5곳을 열었다(왼쪽 사진). 박영민 록야 대표는 꼬마감자를 재료로 한 간편가정식 제품을 개발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춘천=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지난해 ‘A FARM SHOW’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전성호 치즈명가 대표는 직접 만든 치즈 소스로 맛을 낸 면 요리 식당 5곳을 열었다(왼쪽 사진). 박영민 록야 대표는 꼬마감자를 재료로 한 간편가정식 제품을 개발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춘천=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청년실업의 시대, 작은 씨앗 하나에 청춘의 꿈을 담은 젊은이들이 있다. 감자 유통과 재배기술 개발기업 ‘록야(綠野)’의 박영민, 권민수 공동대표가 그들이다. 33세 동갑내기인 이들은 새로운 감자 재배 기술을 개발하는 등의 성과로 지난해 63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농업이 사양산업이라는 편견을 깨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미래 희망의 씨앗을 발아시킨 이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 흔한 감자가 ‘금(金)자’가 되다

각각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 원예학과를 나온 두 사람은 강원도의 대표적 작물인 감자로 성공한 농업기업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우고 2011년 회사를 설립했다. 키위 하나로 세계적 기업이 된 제스프리나 오렌지 기업 선키스트처럼 성공하고 싶었다.

이들은 감자 중에서도 한입에 먹기 좋아 소비자가 선호하는 ‘꼬마감자’를 눈여겨봤다. 당시만 해도 농민들은 꼬마감자 생산을 기피했다. 면적당 생산량이 일반 감자에 비해 적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꼬마감자의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을 찾다가 ‘육묘장’에 주목했다. 육묘장은 여러 층의 선반에서 논에 심기 전 단계의 모를 키우는 곳이다. 벼농사 특성상 1년에 한 달 남짓만 사용하기 때문에 남은 기간 동안 감자 재배에 활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육묘장에서 꼬마감자를 키우는 기술은 생산량을 크게 늘렸다. 이곳에서 꼬마감자를 키우면 노지에서 일반 감자를 재배했을 때의 5배, 꼬마감자의 경우는 10배로 생산량이 증가했다. 이들은 계약한 농가에 새로운 꼬마감자 재배법을 전수했고 2013년 특허도 받았다.

두 젊은 창농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형 편의점 업체와 협업해 꼬마감자를 간단히 데워 먹을 수 있는 간편가정식 제품을 개발했다. 간식과 캠핑 요리로 제격인 이 제품은 이달부터 생산에 돌입한다. 두 사람은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9∼10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한 ‘농수산식품 창업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 콘테스트는 농식품부가 농식품 분야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찾아 사업화를 지원하려고 만들었다.

사업이 처음부터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창업 후 5년 동안 월급을 가져간 달보다 한 푼도 못 번 달이 많았다. 계약을 맺기 위해 찾아간 감자 농가에서는 “어린애들이 뭘 하겠냐”는 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이들을 보는 시선을 바꾼 것은 청년의 패기였다. 박 대표는 “계약한 농가의 감자는 어떻게든 팔아주려 했고, 가공업체와 유통업체한테는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며 관계를 다졌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청년의 역량과 열정으로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산업이 농업”이라고 강조했다. 정보통신 기기 활용 등 청년에게는 별것 아닌 역량도 농업 분야에서는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다른 산업에 비해 변화 속도가 느렸던 만큼 농업에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적용될 여지가 크다.

이런 이유로 록야는 기회가 될 때마다 농업 창업에 관심 있는 청년들의 모임을 주선하고 상담해 주고 있다. 미래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청년 창농인의 육성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분명하다. “농업에 뛰어드는 청년이 많아질수록 산업 자체가 커져 더 많은 기회가 청년들에게 주어질 거라 믿습니다.”
○ 부가가치가 큰 6차산업으로 창업하라

청년들이 관심을 갖는 창농 아이디어는 단순한 작물 생산에 멈추지 않는다. 작물을 색다르게 가공하고 판매 방식을 다양화한 6차산업이 청년 창농의 주를 이룬다.

농식품부의 6차산업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차산업 창업자 중 30대 이하 비중이 16.7%로 2014년 9.3%의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지난해 6차산업 창업자 중 귀농인은 45.9%다. 2014년 36.8%에서 더 늘어 이제는 절반에 이르는 수준이다. 귀농을 결심하는 많은 이들이 기존 농업보다 부가가치가 큰 6차산업으로 창업하고, 이들 중 상당수는 젊은 청년이라는 의미다.

6차산업은 부모 세대의 농업을 이어받을지를 두고 고민하는 청년에게도 좋은 기회가 된다. 아버지가 재배한 사과로 ‘해독 주스’를 만들고 사과 수확 체험 농장을 운영하는 이동훈 디엠지플러스 대표(29)는 “아버지가 힘들여 수확한 사과가 제값을 받지 못하는 걸 보고 단순 농업이 아닌 복합 산업으로 전환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매출은 사과만 팔 때보다 6차산업으로 탈바꿈한 후 5배로 증가했다.

농업 분야 창업을 위한 정부의 지원도 체계화되고 있다. 5, 6년 전만 해도 창농 지원을 담당하는 기관조차 드물었다. 중소기업청을 찾아가 지원을 요청하면 농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담당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다. 지금은 농식품부는 물론이고 지자체들도 청년 창농인 육성에 적극적이다.

최근 1년 사이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농식품 분야 창업만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농식품벤처·창업지원 특화센터가 지난해 6월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에 문을 연 데 이어 올해 5월 강원과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에도 세워졌다. 특화센터 3곳에서 지난달까지 이뤄진 상담 건수는 560건. 특화센터가 국내외 온·오프라인 유통업체와의 연결을 주선해 판로를 뚫어준 사례도 48건에 이른다.

춘천=한우신 hanwshin@donga.com / 이호재 기자
#농업#편의점#꼬마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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