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70주년 경축사에서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 중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 ‘50-30 클럽’ 국가는 여섯 나라뿐”이라며 대한민국이 일곱 번째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던 가난한 국가에서 일류 국가로 도약할 것이라는 비전이지만 지금 한국 경제는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일본식 장기불황의 초입에 서 있다. 2년 전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가 “한국 경제는 저성장, 고물가, 과도한 경상수지를 보이면서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으로 걸어왔던 길을 가고 있다”고 지적했으나 그 뒤에도 구조개혁을 외면하면서 과잉인력, 과잉설비, 과잉채무의 늪에 빠져드는 형국이다.
최근 한국의 인플레이션을 포함한 명목 국내총생산(GDP)이나 저출산·고령화 추이 그래프를 보면 20년 시차를 두고 일본과 거의 겹쳐진다. 그래도 일본은 장기 불황이 시작된 1992년,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었고 기업은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세계 경기는 호황이었다. 현재의 한국은 2006년 2만 달러를 넘은 이후 10년째 3만 달러의 문턱을 넘지 못한 ‘중진국의 함정’에 빠진 데다 원천기술을 보유한 기업도 적다. 보호무역주의 바람이 거세 외부환경도 불리하다.
한국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를 무턱대고 베끼다가 위기를 자초했다. 아베노믹스는 금융 완화, 재정지출 확대, 구조개혁을 통한 성장이라는 3개의 화살이 핵심이지만 재정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소비세 인상이라는 인기 없는 처방까지 감수한 장기 플랜이다. 한국은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경기 부양책을 따라하면서도 금리 인하 타이밍을 놓쳤고 노동개혁 등 구조개혁의 칼은 빼지도 못한 상태다.
내년 한국의 나라살림 규모가 400조 원의 ‘슈퍼 예산’이다. 보건·복지·고용 분야 예산이 사상 처음으로 130조 원을 넘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일본이 고령화와 함께 사회보장 지출이 급증하면서 순식간에 GDP의 200%가 넘는 국가부채를 짊어지게 된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국가부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 선이라고는 하나 일본처럼 저성장 장기화에 비슷한 인구구조로는 선진국도 못되면서 빚더미만 키울 우려가 있다. 구조개혁이 동반되지 않은 경기부양 정책은 효과가 한정적, 일시적이어서 재정건전성만 크게 악화시킨다는 점을 일본에서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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