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경영자의 기업 운영을 감독하는 것이다. 특히 사외이사는 독립적 위치에서 경영자의 직무 수행을 감시하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임무를 맡는다. 하지만 이사회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사회의 독립성은 경영자와 사외이사들 사이의 학연 및 지연 같은 ‘연줄’은 물론이고 제3자들은 쉽게 파악하기 힘든 ‘네트워크’에 의해서도 위협받는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이광준 연구위원과 미 플로리다대 이종섭 교수 연구팀은 경영자와 사외이사 사이에 존재하는 ‘정치성향의 유사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에 주목했다. 사람들이 가진 유사성이 그들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회학 이론을 바탕으로 연구팀은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정치성향의 유사성이 경영자와 사외이사들 간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가설이다. 한마디로 경영자와 사외이사들 사이에 정치성향이 일치하면 이사회의 독립성이 손상되고 기업 가치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연구팀은 미국 연방선거관리위원회에 보고된 정치후원금 자료를 이용해 경영자와 사외이사들의 정치성향을 파악했다. 기업별로 경영자와 사외이사들의 정치성향 일치도를 0과 1 사이 값으로 측정했는데 1에 가까울수록 정치성향이 일치한다는 뜻이다.
그 결과 경영자와 사외이사들의 정치성향 일치도는 기업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성향 일치도가 표준편차(0.19)만큼 증가하게 되면 기업 가치는 2.24% 감소했다. 또 총자산순이익률(ROA)은 2.92% 하락하며, 경영자 보상과 성과의 관련성은 19%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영자와 사외이사들의 친밀한 유대관계가 기업의 영업활동 성과를 저해하며 성과보상 체계를 왜곡시켜 기업 가치를 손상한다는 얘기다. 경영자와 사외이사들의 정치성향 일치도가 높을수록 경영성과가 낮은 경영자들이 교체될 확률도 현저히 낮아졌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등의 대규모 회계부정은 이사회 등 감시 기구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이사회가 경영자에 대한 감시·감독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독립성 유지’라는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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