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2인자이자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인 이인원 부회장(정책본부장)이 26일 롯데 경영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소환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태에서 발견됐다. 그는 유서에 “제가 본부로 부임한 후 롯데그룹에 부외(簿外)자금은 없다”고 적어 2007년 이후 그룹 차원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부인했다. 검찰 수사의 압박감이든, 조직을 위해서든 신동빈 회장을 ‘정도 경영을 하려 애쓴 분’이라며 끝까지 감싼 ‘43년 롯데맨’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롯데는 6월 10일 정책본부와 17개 계열사에 대한 대규모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조직적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강도 높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은 롯데면세점 입점 대가로 수십억 원의 뒷돈을 챙긴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을 구속했고, 신격호 총괄회장이 일본롯데홀딩스 지분 6%를 사실혼 배우자인 서미경 씨 모녀에게 넘겨주면서 세금을 포탈한 혐의를 찾아냈다. 하지만 핵심 의혹이던 정책본부를 기점으로 한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과 이를 통한 로비 의혹, 최종 타깃으로 삼은 신동빈 회장에 대한 수사는 별 진척이 없다. 신 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핵심 피의자로 검찰이 지목했던 이 부회장이 자살하면서 수사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형국이다.
먼지떨이식으로 파헤쳐진 수사는 롯데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지난해 신동주 신동빈 형제의 경영권 분쟁으로 시작해 롯데홈쇼핑의 갑질, 불투명한 순환출자 구조, 정체 불명의 일본기업이 한국의 재계 서열 5위인 롯데그룹을 좌지우지하는 지배구조가 드러나 질타를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에 허위 자료를 제출하는 등 한국의 법질서를 우롱하는 모습을 보여 ‘재벌개혁 필요성’의 산 표본처럼 된 것도 사실이다.
이 부회장의 자살 때문에 기업 비리 수사가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검찰이 이 잡듯 저인망 수사를 하고도 신 회장의 혐의를 밝히지 못했다면 수사에 무리가 없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수사 착수 때부터 전(前) 정권 인사들을 겨냥한 ‘하명 수사’라는 의혹도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이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작년 12월 취임하며 “부정부패 수사는 영명한 고양이가 먹이를 취하듯이 적시에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8개월 넘게 질질 끌고도 용두사미로 끝난 지난해 포스코 수사의 전철(前轍)을 밟아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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