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직 공무원 채용에 지원하는 ‘반수생’ 직장인 늘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8일 16시 57분


대기업 과장인 김모 씨(34·여)는 누구보다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퇴근 후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직적격성평가(PSAT)를 공부하고 주말에는 스터디모임에 참여한다. 야간대학원도 다니고 있다. 이렇게 주경야독(晝耕夜讀)하는 이유는 공무원으로 이직하기 위해서다. 그는 “지인이 지난해 공무원 7급 경력직에 합격했다”며 “나도 공무원이 더 적성에 맞을 것 같아 틈틈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2011년부터 민간경력자 일괄채용 시험(공무원 경력직 채용 시험)을 시작한 후 사기업에서 경력을 인정받아 공무원 경력 채용에 응시하려는 ‘반수생’ 직장인이 늘고 있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이 “우수한 민간 인재를 공직에 끌어들이기 위해 외부 인재 채용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됐다”고 언급한 것처럼 공무원 경력직 채용 규모는 꾸준히 확대돼 왔다. 이와 동시에 지원자 수도 같이 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공무원 경력 공채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공무원 경력직 채용은 국내 시행 첫해부터 큰 인기를 모았다. 2011년 102명 모집에 3317명이 지원해 32.5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5급 시험만 있던 2014년까지, 채용 인원은 100명을 조금 넘은 데 비해 지원자 수는 3000명을 웃돌았다.

지난해부터 7급 경력직 채용이 확대되면서 직장인들 가운데 안정적인 공무원으로 눈길을 돌리는 이들은 더욱 많아졌다. 지난해 5·7급을 합쳐 224명을 선발하는 데 총 5656명이 지원했다. 올해는 지원자 수가 6000명을 훌쩍 넘었다. 특히 7급 공채에는 대기업 직원과 회계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대거 몰렸다. 지난해 합격자 절반 이상이 석사 학위 이상의 학력을 보유했을 만큼 고학력자가 몰렸다.

인사혁신처는 경력직 채용 시험에 대해 “천리안 위성 개발자, 벤처 기업가, 아랍 현지 건설 근무자, 디자인 전문가 등 공채로는 충원이 어려운 분야의 민간 전문가들을 대거 뽑을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공직은 다양성, 전문성 확보라는 취지를 달성했지만 기업은 울상이다. 기껏 돈을 들여 교육시켰더니 공무원을 하겠다고 인재들이 떠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신입사원이 아닌 실무자나 중간급 관리자 등 조직의 허리를 담당하는 이들이 떠나면 공백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한 명의 인재가 귀한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는 더욱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이직 자체뿐만 아니라 이들이 PSAT, 영어 등 시험을 준비하면서 업무를 뒷전으로 미뤄 업무 집중도를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어려운 관문을 뚫고 좋은 직장에 들어온 이들조차 공무원을 꿈꾸는 시대가 됐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령화로 인해 수명이 길어지면서 사기업보다 고용이 보장된 ‘공기업이 갑(甲)’인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기업들은 인재가 계속 머물 수 있도록 내부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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