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방앗간 줄줄 꿰는 ‘참기름 소믈리에’… “고소한 명물 짭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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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장 전통시장 진출기]<2>서울 구로시장 이희준씨

서울 구로시장의 참기름 편집숍 ‘청춘주유소’를 운영하는 이희준 씨가 자신이 직접 짠 한정판 참기름을 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이 씨는 직접 참기름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의 유명 참기름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참기름 소믈리에’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서울 구로시장의 참기름 편집숍 ‘청춘주유소’를 운영하는 이희준 씨가 자신이 직접 짠 한정판 참기름을 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이 씨는 직접 참기름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의 유명 참기름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참기름 소믈리에’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 참기름은 부산 부평깡통시장에서 착유한 거예요. 경북 안동에서 자란 참깨를 원료로 썼고, 2대째 방앗간을 운영하는 어르신과 함께 50년째 쓰고 있는 전통 솥에서 깨를 볶아 짠 거예요.”

테이블에 나란히 놓인 세 병의 참기름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이희준 씨(28)의 얼굴에선 빛이 났다. 모두 이 씨가 운영하는 ‘청춘주유소’에서 내놓은 한정판 참기름이다. 각각 경북 경주 안강시장, 부산 부평깡통시장, 서울 중곡제일시장에서 수십 년째 방앗간을 운영해 온 ‘참기름 장인’들과 짠 것이다. 참깨의 원산지, 착유지, 유통기한 등이 적힌 라벨이 병마다 달려 있었다.

지난달 25일 청춘주유소에서 만난 이 씨는 고급 와인에 대해 설명하는 소믈리에처럼 세 종류의 참기름에 대해 능숙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의 목소리에서 직접 짠 참기름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7월 26일 구로시장 영프라쟈에 참기름 편집숍인 청년주유소가 문을 연 뒤 이 씨의 참기름은 세 종류 합쳐 약 400병 가까이 팔렸다. 이 씨의 설명을 듣는 내내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코를 찌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참기름 소믈리에’로 변신한 시장 도슨트

이 씨는 자신을 ‘전통시장 도슨트(안내인)’라고 소개했다. 사라져 가는 전통시장을 알리고, 보존하고,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다. 2013년 초 전통시장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전국의 시장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공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통시장들을 소개하는 책을 내기도 했다. 방송 등을 통해 시장을 알려왔지만 상인이 아닌 그가 ‘시장 커뮤니티’를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이 씨는 스스로 상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시장이 사라질 때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상점은 무엇일까. 이 씨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방앗간’이었다. 전국의 전통시장을 3만 번 이상 다녀왔다는 그에게 방앗간은 시장의 처음과 마지막을 지키는 특별한 곳이었다.

“상점이 10개 미만으로 줄어든 시장에도 늘 방앗간은 남아 있어요. 대전 가양시장은 지금 상점이 7곳 남아 있는데 그중 6곳이 방앗간이고요, 서울 상계시장도 지금 남은 상점 7곳 가운데 2곳이 방앗간이에요.”

이 씨는 방앗간에서 만드는 참기름이 ‘메이드 인 전통시장’의 개념에 가장 잘 맞는 상품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 파는 물건들은 산지에서 가져와 판매하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시장 내에서 2차 가공을 거치는 물건은 많지 않다. 그중에서도 참기름은 시장 내 방앗간에서 직접 짜내고, 대기업의 식품공장을 제외하면 이를 대신할 곳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그때부터 이 씨는 전국의 전통시장에 갈 때마다 그곳에서 가장 유명한 방앗간들을 찾아다녔다. 방앗간 주인들은 “방앗간을 지키고 싶다”는 젊은 청년의 요청에 흔쾌히 수십 년째 이어온 착유 기술을 가르쳐줬다. 그렇게 수년간 발품 팔아 배운 지식과 기술로 청춘주유소를 열었다.
○ “참기름으로 전통시장을 지키는 게 내 역할”

청춘주유소에서 파는 한정판 참기름은 이 씨가 전국 각지의 참깨밭을 찾아가 직접 깨를 털고, 근처의 맑은 물을 찾아 씻은 국내산 참깨를 쓴다. 참깨를 확보하고 나면 전국 전통시장의 ‘참기름 장인’들을 찾아가 함께 착유한다. 몸에 좋고 맛있는 참기름을 위해 한 번에 최소 수량만 착유하기 때문에 참기름 한 종류에 대략 70∼80병만 생산한다.

착유를 하기 전 미리 이 씨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 등을 통해 예약을 받는다. 청춘주유소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도 구매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참기름 한 병(320mL) 가격은 3만∼3만5000원 선. 올 추석을 앞두고 더 작은 용량의 보급형 참기름도 선보일 예정이다.

“국내산 참깨의 자급률은 6%밖에 안 돼요. 사실상 전부 수입하고 있는 거죠. 그 6% 남은 참깨를 힘들게 찾아다니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참기름을 맛보이고 싶어서예요. ‘참기름이 이렇게 고소하고 맛있는 거구나’를 알려 드리고 싶은 거죠.”

청춘주유소에서는 전국 전통시장의 유명 참기름도 만나볼 수 있다. 이 씨가 그동안 네트워크를 쌓아 온 전국 방앗간 200여 곳의 참기름을 소개하는 것이다. 특정 지역의 참기름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씨가 해당 방앗간에서 살 수 있도록 연결해준다.

이 씨의 꿈은 청춘주유소를 중심으로 전국에 ‘방앗간 플랫폼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가 찾아다닌 방앗간 중에는 더 이상 이어받을 사람이 없어서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인 곳이 많았다. 60∼70년 평생 방앗간을 지켜온 이들의 기술과 노하우가 그대로 사라지는 셈이다. 이에 이 씨는 곧 문을 닫게 될 방앗간들을 인수할 생각이다. 해당 방앗간을 청춘주유소로 바꾼 다음 원래 주인을 재고용하고 지역 청년 상인들이 그 기술을 배우는 방식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방앗간 플랫폼을 통해 가족이 아닌 지역 청년들이 대를 이어 전통을 지켜 나가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고 싶어요. 전통시장을 보존하고 재해석해서 알리는 것이 제 역할이니까요.”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참깨#참기름#전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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