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CEO]우레탄 트랙 파문에 체육시설업계 ‘벙어리 냉가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5일 03시 00분


전국의 학교에 설치된 우레탄 운동장에서 ‘납’ 성분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유해성 여부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시발점은 3월 환경부가 연세대 의대부속 환경공해연구소에 우레탄 트랙 시험 용역을 준 결과를 발표하면서 야기됐다. 당시 환경부는 우레탄 트랙 운동장에서 납 성분이 다량 검출됐다고 발표하면서 어린이시설에는 장기적으로 사용을 자제할 것을 권유했다. 이에 따라 각 시도 교육청은 각급 환경단체와 학부모들의 주장에 따라 전량검사를 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사용금지’ 조치를 내렸다.

학교운동장 등 체육시설의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관련 업계는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한국체육시설공업협회 등 관련 업계에 따르면 우레탄 트랙의 유해성은 사실과 다르며 현재 공급된 우레탄 트랙은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우레탄 트랙은 우선 시험 측정방법에 대한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세계적으로 옥외 체육시설 제품은 ‘용출법’ 시험을 적용하지만, 이번 우레탄 트랙에 대한 시험법은 ‘총함량법’을 잣대로 세워 문제가 발생했다. 환경부는 우레탄에 대한 산업표준(KS) 기준을 2012년부터 강화했지만, 강화되기 이전의 시설들에서 유해성 논란이 불거졌다.



“법 개정 이후 표준미달 트랙은 책임지고 조치”


‘용출법’은 해당 검사 재료에서 접촉이나 섭취 등을 통해 얼마나 많이 유해성분이 배출·흡수되는가를 가려내는 시험방법이다. 하지만 2012년 12월부터 강화된 ‘총함량법’은 해당 검사재료에 중금속이 얼마나 함유되어 있는지를 검사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 시험법에서는 그 결과와 차이가 엄청나게 다르게 나타난다.

업계에서는 현행 표준이 되는 총함량법은 옥외 운동장 체육시설 제품에는 맞지 않는 시험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총함량법은 워낙 까다로운 가이드라인 때문에 선진국에서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용출 시험방법은 지금도 선진국에서 어린이 놀이시설과 완구, 생활기기 등에 널리 사용된다. 시험법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 것이다. 전국적인 우레탄 트랙 사태는 결국 환경부의 애매한 잣대와 지나친 기준 강화로 인해 불거졌다.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성도 문제가 있지만, 섣부른 발표로 논란을 야기하고 소비자 불안만 가중시켰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협회 및 관련업계는 “정부가 KS표준 운용 규정상 ‘시험법’을 잘못 적용한 것이라는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만 2012년 12월 이후 조성한 학교 중에서 표준 미달 트랙이 나온다면 협회와 회원사가 책임지고 조치하며 이후 품질개발 등으로 친환경 운동장 조성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협회 측은 무조건 우레탄 트랙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과민반응’이라는 지적과 함께 명확한 유해성 기준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레탄 트랙 시공업체들도 유해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마녀사냥 식으로 매도당했다고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표준을 제정하고 관리하는 것은 국가적인 책임인데, 시공업체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옥시 사태와 더불어 학교 운동장의 유해성 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협회와 회원사들이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당하고 있어 너무 괴롭다”며 “물질적, 재정적, 사업적 손실은 물론이고 업계 종사자들의 생계가 점정 막막해지고 회사가 존폐 위기에까지 내몰린 상황”이라고 전했다.



‘트랙 표면만 교체’ 등 현실적 해결책 모색해야


우레탄 트랙의 유해성 논란이 일면서 일선 학교에서도 매우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실제로 일부 학교는 옛 방식인 마사토로 선회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흙먼지가 날리는 마사토를 선호하는 것은 언제 어떻게 기준이 또 바뀔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이다. 하지만 막대하게 소요되는 예산이 문제다. 납이 초과 검출된 곳을 모두 철거, 교체하려면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실제로 마사토에 대한 품질 및 안전기준이 없는 상태에 정말 확실한 대안이 될지도 따져봐야 한다. 마사토라고해서 다 안전한 것은 아니다.

과거 다양한 학교 운동장 조성사업을 통해 드러난 사례를 보면 마사토와 천연잔디에 대한 사용자 만족도도 낮았다. 흙에서 나오는 기생충과 천연 잔디 관리 과정에서 불가피한 살충제 사용 등이 또 다른 문제로 대두되기 때문이다.

협회 관계자는 “우레탄 트랙에서 납 성분이 검출됐다면 마사토로 교체하는 것보다는 트랙 표면을 교체해 비용 및 시간을 절감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결책”이라며 “정부는 향후 생길 문제점을 사전에 파악해 향후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효율적이고 신속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협회는 최근 우레탄 트랙의 유해성 논란을 반박하는 현장 사례를 공개해 주목받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소재 신답초등학교에 친환경 공법으로 시공한 우레탄 재포설 공사의 시험 결과를 통해서다. 6월 말 교육부와 협의를 거쳐 시공한 이 프로젝트에서는 기존 트랙에 보수용 우레탄을 도포 후 엠보싱 코팅 처리(오버 레이 공법)를 해 국가 공인 연구기관에 납 성분 검출시험을 의뢰한 결과 ‘불검출’ 판정을 받았다. 친환경기업 국가공인기관인 FITI시험연구원과 한국화학융합연구원(KTR), (재)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세 곳에서 발표한 ‘우레탄 트랙 납 성분 검출시험 결과 보고’에 따르면 개선작업 후 4대 중금속이 불검출됐다. 특히 이번 시험은 ‘용출법’이 아닌 정부가 강화한 ‘총함량법’으로 실시돼 우레탄 트랙의 유해물질 논란이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최윤호 기자 uknow@donga.com
#우레탄#트랙#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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