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뷰스]대전환기 맞이한 한국 보험산업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5일 03시 00분


김헌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김헌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지난 봄 지급여력비율(RBC)이 250% 이상이고 자산 17조 원이 넘는 생명보험사가 고급 아파트 한 채 값인 35억 원에 매각됐다. 국내 보험사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난 이 사건은 보험료 규모 세계 8위인 한국 보험산업의 대전환기가 시작되었다는 위기의 신호탄이었다.

이 전환의 시작은 회계제도 변화다. 보험사들은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적용으로 2020년까지 46조 원의 준비금을 추가로 적립해야 한다. 새 회계기준으로 계산하면 생보사들의 RBC가 311%에서 83%로 대폭 하락한다. 다수의 생보사가 감독당국의 재무건전성 기준인 150%를 유지하지 못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7년 전 한국이 국제회계기준을 전면 도입하면서 예상됐던 문제지만 보험사도, 금융당국도 차근차근 대비하지 못한 채 여기까지 오게 됐다. 향후 자본 규제가 다소 완화될 수는 있겠으나 소비자 보호와 재무건전성을 위해서라도 상당한 신규 자본의 투입이 불가피하다.

보험산업 변화의 또 다른 축은 규제개혁 드라이브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상품 및 가격 규제를 철폐하는 등 ‘규제 권한’을 내려놓고 ‘그림자 규제’를 혁파하겠다고 선언했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규제개혁의 효과는 신상품 개발, 그림자 규제 축소, 소비자 보호 강화로 나타나 긍정적이다.

이 두 가지 변화는 보험산업의 누적된 문제에서 비롯됐다. 야구에서 보듯이 튼튼한 수비 없이는 9회말 투아웃 이후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과거 보험산업은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일단 팔고 보자’는 단기실적주의가 만연했다. 여기에는 보험 부채를 원가로 평가하는 방식과 왜곡된 자본 규제가 일조했다. 말로만 약속하고 그 약속을 뒷받침할 자본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확정·고금리로 덤핑하는 행태가 많았다. 자본 규제가 왜곡돼 있다 보니 부채를 제대로 평가하고 영업하는 보험사의 시장 점유율은 줄어들고, 양적 팽창을 추구하는 보험사의 시장 점유율이 증가하는 ‘비정상’의 시대가 지속됐다.

새로운 자본 규제는 보험사에 자본 확충의 부담을 주지만 동시에 비정상을 도려내고 보험산업이 한 단계 성장할 기회를 준다. 자본 규제는 장기적으로 보험산업 전체를 더 튼튼하게, 더 건전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글로벌화와 정보기술(IT)의 급격한 발전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세계적 추세다. 이 환경에서 규제개혁은 금융산업 생존에 필수적이다. 영국, 싱가포르, 호주 등 금융개혁에 성공한 나라의 공통 키워드인 ‘규제개혁’을 우리 나름대로 완수한다면 우리의 보험산업도 좀 더 선진화될 수 있다. 하지만 규제개혁 드라이브는 정부의 의지가 수그러드는 징후가 보이면 순식간에 동력을 잃는다. 안팎의 저항에 흔들리지 않고 규제 완화의 깃발을 유지하는 정책적 뚝심이 필요하다.

대전환기에 한국 보험산업이 다시 일어서려면 금융강국, 금융허브와 같은 화려한 술사보다 국제적 정합성을 갖춘 자본 규제, 지속적인 규제 완화와 함께 철저한 소비자 보호로 내실을 다져야 한다. 보험사들은 새로운 회계기준 및 자본 규제 아래서 단기적인 외형 확대보다 리스크와 자본을 철저히 관리해 계약자에 대한 실질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금융지식을 함양해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책임 있는 소비자도 늘어난다면 한국 보험산업은 소리 없이 다시 비상할 것이다.

김헌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보험산업#지급여력비율#규제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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